신천박물관에는 대학살만행이 감행된 온천얼음창고가 옛 모습대로 꾸려져있다.
창고처마에는 한겨울의 고드름들이 방불하게 맺혀있다.
당시 이곳 인민들은 온천얼음창고에 얼음을 저장해두고 생활에 리용하였다고 한다.
해방전 거미줄만 쓸던 쌀독에는 옥백미가 철철 넘쳐났다.
가난과 설음만이 구석구석 웅크리고있던 초가집터우에 번듯하게 새로 지은 행복의 보금자리들에는 삶의 윤기가 돌았다.
생활의 풍성함과 기쁨은 미처 다 누릴수 없으리만큼 아름찼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쓰고살 걱정이 줄어들수록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 땅에서 거두어들인 모든것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넉넉한 살림살이에도 낟알 한줌, 남새 한포기 헛되이할수 없는 걱정이였다.
넘쳐나는 기쁨과 락을 온 한해 아니 평생토록 두고두고 누리고싶은 마음을 담아 사람들은 덩실한 창고에 해마다 얼음을 가득가득 채워넣군 하였다.
그리하여 철 아닌 때에도 얼음창고의 처마에는 고드름이 드리웠으리라.
그 세월에 그것은 넘쳐나는 행복의 상징이였다.
하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이 어린 얼음창고에서 몸서리치는 참상이 벌어질줄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던가.
1950 년 10월말 수많은 인민들이 감금된 온천얼음창고앞에 나타난 미군장교놈은 《시범동작》을 한다고 하면서 항거하는 16명의 애국자들을 끌어내여 권총으로 쏘아죽이고는 모조리 불태워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이리하여 1 2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이 온천얼음창고에서 처참하게 불에 탔다.
타래쳐오르는 화염을 뚫고 울려퍼진 피타는 절규, 구천에 사무친 원한…
피젖은 땅에 낟알에 앞서 복수를 심고 자래운 60여년이 흘렀다.
복수자들의 가슴속에 신천땅의 교훈을 더 깊이 새겨주시려 박물관을 찾으신 그날 백두의 뢰성마냥 울린
피는 피로써! 미제와의 결산은 반드시 총대로!
이 신념과 의지로 설계와 형성안으로부터 미술작품창작과 내부전시, 구호와 안내표식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정력적인 지도를 주신
온천얼음창고의 처마에 주런이 달린 고드름들도 행복이 꽃피던 신천의 강토를 피와 주검으로 뒤덮은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해마다 가고오는 계절과 함께 자연의 고드름은 수없이 맺혔다가 녹아내리였지만 신천의 고드름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반세기이상 오늘날까지 세월의 풍화에도 끄떡없는 신천의 고드름, 하늘땅에 사무친 원한, 소중한 모든것을 유린한 미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년년이 서리고 맺히여 해와 달이 바뀔수록 더욱더 서슬푸른것이다.
수십년 쌓이고쌓인 피절은 원한과 절규, 증오와 복수를 다짐하며 조국방선초소로, 공장과 농촌, 학교로 달려간 새세대들은 그 얼마이던가.
신천의 얼음창고고드름은 우리 당의 선군정치를 받들어가는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보복열기를 더해주며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몸뚱이를 결딴내고야 말 복수의 날창이 되고 멸적의 장검이 되였으리라.
오, 신천의 고드름이여.
세기와 세기를 이은 반제반미대결의 최후승리를 이룩하는 그날까지 복수자들의 가슴마다에 너는 서슬푸른 총창으로 남아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