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단편소설 《소방울소리》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백현숙
 2015.9.25.

1

무렬이 와당탕퉁탕 뜨락또르의 속력을 높이는 바람에 옆을 지나가던 해반지르르하게 생긴 처녀가 깡충 놀라 토끼뜀을 하더니 길옆 코스모스꽃속으로 홀짝 뛰여들어갔다. 낯빛이 해쓱해서 서있는 꼴이 아마 몹시도 놀란 모양이다. 무렬은 그러는 처녀를 어이없이 바라보고는 흥-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참참, 저 말간 입술로는 쌀이 안 들어가고 바나나만 들어가나.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거름을 실은 뜨락또르만 보면 오만상을 찌프리고 코며 입이며를 손으로 막고 고개를 외로 틀고 지나간다. 그것이 거름차의 주인에게는 어떤 불쾌감을 주리라는것은 안중에도 없이.

벌써 여러해째 이 일을 해오는 무렬이지만 아직도 벼모 몇대 꽂아보지 못하고 자연의 순환법칙도 모르는 저런 《공주님》들을 대할 때마다 오장이 꿈틀거렸다. 화장품냄새보다 들판의 낟알향기를 더 사랑하는 춘림이와 같은 처녀들이 모욕을 받는것만 같았던것이였다.

춘림은 70년대의 첫해인 올해에 기어이 정보당 벼 5톤을 내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자고 김이 문문나는 두엄더미우에서 두손을 가슴에 포개얹고 분조원들에게 호소하였었다. 그리고는 대추집할아버지네 두엄을 한웅큼 손에 들고 《보세요. 얼마나 잘익은 두엄이나요. 대추집할아버지네가 제일입니다.》하며 온 얼굴에 밝은 웃음을 지었었다.

헌데… 어떤 사람들은 거름을 꺼려한다. 오늘일만 해도 그렇다. 무렬은 첫새벽에 농장에서 그닥 가까운 축이 아닌 해주시내에까지 나가 인분을 두차 실어나르고 이젠 좀 쉬라는 작업반장의 인정기어린 목소리를 구두표창처럼 들으며 한탕 더 뛰려고 떠난 참이였다. 이제 한차만 더 실어나르면 시험적인 벼짚거름생산준비가 멋들어지게 완결되고만다.

이제 벼짚거름까지 내면 풍년은 받아놓은 당상이요, 엊그제 말썽을 부리던 뜨락또르부속도 교체하여 발동소리가 가릉가르릉 흥그럽게 울리는 터여서 기분이 날아갈듯 하였는데 고 해반주그레한 처녀가 코를 싸쥐는 순간에 싹 잡치고 말았다.

그래도 처녀에게 미안한감이 없지 않아 속도를 내여 그곁을 빨리 지나친다는것이 그만 처녀를 놀래워놓고만것이다. 헌데 웬일인지 처녀의 해쓱하던 표정이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반장이 자기를 만류하던것이 자기를 생각해서라기보다 길손들에게 실례가 될가보아 그런것도 같다. 글쎄 작업반일군이 생각이 다 있어 작업조직을 한것을… 하지만 이왕 떠난 길이니 내처 갈수밖에 없다. 구름처럼 붕 떴던 마음이 비를 맞은 솜처럼 잦아들면서 또 길손이 나타나지 않을가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길손이 없었다. 한창 점심을 맞이하는 시간이였던것이였다.

드디여 그럭저럭 남에게 미안한 일이 더 벌어지지 않고 번듯한 광장앞도로에 접어드는데 돌연 호르래기소리가 귀청따갑게 뜨락또르쪽을 향하여 날아왔다.

무렬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광장 맞은켠에 여러명의 안전원들과 상당한 직급에 있음직한 일군들이 당황하여 무렬을 향하여 손을 단호하게 내휘두르는것이 보였다. 그들의 행동에서 류다른 촉감을 느낀 무렬은 자기가 오지 말아야 할곳에 왔음을 아니, 상상할수도 없는 과오를 범하고있음을 깨달으며 알지 못할 전률이 온몸에 짜릿이 퍼져갔다. 그도 그럴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 황해남도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고계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이 따뜻한 바람처럼 황해도땅에 퍼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문득 방금전에 처녀가 코를 싸쥐였던 모습이 상기되면서 무렬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무렬은 뜨락또르의 조향륜을 돌리였다. 왜서인지 손이 떨리고 방향을 잘 알수 없었다. 한방망이 호되게 얻어맞은 말마냥 뜨락또르는 그냥 한자리에서 이리저리 길길이 뛰며 돌아갈뿐 광장어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있었다.

안타깝고 야속한 시간이 한초한초 육박해들어왔다.

무렬은 광장 맞은켠도로로 까만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고 도당일군들이 아연한 눈길로 뜨락또르를 쏘아보는것을 무아몽중인듯 느끼며 간신히 광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

(리무렬?)

군협동농장경영위원장 윤덕수는 어버이수령님의 짧은 점심시간에 거름냄새를 끄을고 불쾌하게 뛰여든 이 곱지 않은 불청객의 이름이 어딘지 귀에 익어 기억을 되살리느라 끙끙거렸다.

황해남도당위원회 전원회의를 현지에서 지도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신 수령님께서는 오전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빨간 《풍년》호뜨락또르를 띄여보시고 도당으로 부르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마치도 거름을 나르는 그 뜨락또르운전수를 만나시기 위하여 여기 해주땅에 오시기라도 하신듯 오랜 시간 점심도 잊으시고 진지한 담화를 나누고계시였다.

(어디서 꼭 들은 이름인데…)

윤덕수는 나무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좀전에 도당청사 앞마당으로 퉁탕거리며 들어서던 뜨락또르운전수의 민망스럽던 모습을 상기해보았다. 얼굴은 갱핏하고 키만 멋없이 꺽두룩한데 청년답지 않게 잔등이 꺼꺼부정하였다. 아마도 그 큰 키에 하루종일 뜨락또르에 앉아있다나니 등이 그렇게 굽은듯싶었다.

(얼굴이 꼭 시루속의 콩나물처럼 새말간것이… )

운전수의 해말간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윤덕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그 녀석이구나. 춘림이가 같지도 않는 자랑을 늘어놓던.)

윤덕수는 다름아닌 춘림을 수령님앞에 내세운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하게 들뛰기 시작했다.

춘림은 윤덕수의 더없이 살밭은 조카이며 왕신협동농장 3작업반 4분조장이였다. 언젠가 춘림이가 《해쓱해서 돌아가는 무렬동물 보면 가슴이 아파요. 10톤을 하겠다고 장참 뜨락똘에서 내릴줄 모르니.》하고 걱정스럽게 종알거리던것을 윤덕수는 기특하게 들었었다. 그림의 떡같은 정보당 10톤소리를 들고다니는 철딱서니없는 공상가가 춘림이말고 또 있구나 생각되면서도 낯모를 청년운전수에 대하여 애모쁜 감정을 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풍선같은 10톤소리며 도당청사에 어울리지 않는 거름냄새며가 윤덕수를 불안하게 만들어놓았다.

무렬의 출현이 마치도 자기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윤덕수는 수령님앞에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가 없었다.

(저 녀석까지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면… )

윤덕수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오전에 있은 회의의 전경을 가슴아프게 돌이켜보았다.

수령님께서는 당 제5차대회를 앞두고 황해남도의 6개년계획을 먼저 토의에 붙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당에서는 이제 래달에 당 제5차대회를 열고 사회주의경제건설 6개년계획을 제시하려 한다, 6개년계획에서 자신께서는 전국적으로 700-750만톤의 알곡생산목표를 내걸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자면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서 죽으나사나 200만톤은 맡아주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황해남도 6개년계획에 200만톤이라는 방대한 알곡생산수자를 박느냐 마느냐 하는 중대한 마당에서 수령님께서는 불쑥 유치원아이들까지도 뜬금으로 외우고있는 옛이야기 《황금덩이와 강낭떡》을 꺼내드셨었다.

《옛날에 어떤 마을에 큰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 살던 농민과 지주놈이 나무우에 올라갔는데 농민은 강낭떡을 몇개 가지고 올라가고 지주놈은 금덩어리를 몇개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

옛이야기가 끝났을 때 윤덕수는 머리를 들지 못했었다.

지금이야말로 금을 주고도 쌀을 사올데가 없는 그런 시대임을 윤덕수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올해만 봐도 흉년이 들어 지구라는 큰 마을이 황금덩이로 강낭떡조차 사지 못할 옛이야기의 홍수난 마을처럼 되여버리고말았다. 여러 나라들에서 저저마다 쌀을 사려고 하기때문에 쌀값이 매우 비쌀뿐아니라 쌀을 팔겠다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 좋은 대안이 있으면 다 말해보시오.》

기대가, 믿음이 한껏 실려있는 수령님의 음성이였다.

그러나 윤덕수는 수령님의 기대어린 눈빛앞에서 머리를 떨구었다.

현재 황해남도의 년간알곡생산수확고는 최고 91만톤계선… 지금처럼 정보당 강냉이 2.3톤, 벼3.5톤의 수준에서는 100만톤도 어려웠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구구한 실태자료는 수령님께서 아까부터 벌써 몇번째나 번져보시는 저 문건안에 깨알같이 씌여져있다. 그런데도 수령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를, 기적을 안아올수 있는 신비한 묘안이 반드시 있으리라는것을 굳이 믿고계시는듯 했다.

그러나 자신이 수령님께서 그토록 믿어 기다리고계시는 기적의 묘안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것을 새삼스레 느끼였을 때 윤덕수는 통절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어제날 머슴군이였던, 해방후에는 열성농민으로 이름떨쳤던 자신이 수령님앞에 아무 말씀도 드릴수 없다는 그것으로 하여 윤덕수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쌀은 반드시, 반드시 자급자족해야 합니다.》

오전회의를 마치시며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무거운 음성이 다시금 윤덕수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3

윤덕수가 우려하던 일은 끝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도당일군으로부터 윤덕수에게 왕신협동농장 선춘림분조장에 대한 파악이 있느냐 하는 전화가 걸려온것이였다.

파악으로 말하면 이악이 발발한 그 성격으로부터 웃을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덧이에 이르기까지 모를리 없건마는 윤덕수는 한동안 영문을 몰라 소처럼 우뚝 서서 머뭇거리였다.

《춘림동무네 분조에서 올해 정보당예상수확고가 5.5톤이나 된다는 보고를 들으시고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시였습니다.》

《예? 5.5톤말입니까?》

5.5톤, 그것은 정녕코 믿을수 없는 수자였다. 황해남도에서는 정보당 벼 3.5톤이 최고기록이였다. 그것도 3.49톤인것을 경영위원장 책상머리에서 사사오취하여 만들어낸 수자였다.

(어느분앞이라고 감히?)

윤덕수는 리무렬에게 분격하는 순간에 조카인 춘림에게 욕설이 나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늘아래 자란 싱아대같이 꺽두룩하고 만문하게 생겨먹은, 게다가 어버이수령님앞에서까지 아무 말이나 주어대는 저런 꼭 배기지 못한 녀석을 뭐가 좋다고 칭찬이람.

윤덕수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수화기에서는 도당일군의 활기넘친 목소리가 그냥 울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정보당10톤을 내겠다는 운전수동무의 대답을 들으시고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자기들의 생활을 이악하게 끌어올려가는 농촌의 선진적인 청년들의 열의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는것, 정보당 10톤이 아니라 5-6톤의 수확만 담보되여도 5차당대회 6개년계획에서 700만톤의 알곡생산목표를 내세울수 있다고 하시면서 운전수동무를 이번 회의에서 토론시킬것을 제의하시였다는것, 경영위원장 윤덕수가 토론준비를 좀 봐주어야 할것 같다는것 등등.

윤덕수는 한순간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무렬을 토론시키다니.

그는… 뜨락또르운전수에 불과하다.

너무 어리고 너무 평범하고 너무 경솔하고… 그리고 또… 당원도 아니다. 그런 그를 한개 도의 경제계획을 의논하는 도당전원회의의 연단에 내세우다니…

《저… 그런데 그 운전수동무가 당원이 아니여서…》윤덕수는 말끝을 얼버무리였다.

수령님께서는 200만톤을 하자는 회의인데 200만톤을 하겠다는 사람, 200만톤이 자신있다는 사람은 당원 못지 않은 사람이라고, 꼭 토론을 시켜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도당회의에 숱한 일군, 당원들이 참가했으면 뭘 합니까. 수령님께 만족한 대답 한마디 못드리는것을… 그러니 운전수동무의 토론은 같은 군의 위원장동무가 좀 맡아주십시오.》

《알았습니다.》

송수화기를 놓고나니 덕수는 자기도 알수 없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무엇을 알았단말인가. 여기 왕신군 농사는 어버이수령님앞에서 경영위원장인 자신이 책임지게 되여있다고 윤덕수는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도 올리지 못한 대답을 평범한 운전수가 가볍게 대신해버린것이다. 어서 운전수녀석을 만나봐야겠다. 도대체 궁냥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인지 속내를 확 들춰봐야 마음이 놓일것 같다. 덕수는 무작정 사무실을 나섰다.

윤덕수는 눈에 띄우는대로 앞마당에 서있는 《풍년》호뜨락또르에로 다가갔다. 뜨락또르의 주인은 아직 보이지 않고 가을열매를 익히는 정오의 따가운 해볕만이 뜨락또르의 빨간 도색감을 녹여내릴듯이 쏟아지고있었다.

덕수는 내려쬐이는 해볕을 피해 운전칸안에 훌쩍 올라섰다.

순간 무엇인가가 덕수의 머리에 부딪치더니 뗑그랑, 찌걱찌걱 거친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볼품없는 쇠방울이 운전칸 앞머리에서 뎅겅거리고있었다.

《취미도 참. 이따위 쇠쪼박을…》

입귀를 찡그리며 괴이한 장식품을 일별한 윤덕수는 자기가 앉은 자리가 몹시 불편한것을 느끼고 오사리로 엮은 방석을 힝 들추어올렸다.

뜻밖에도 손바닥만 하게 《10톤 연구일지》하고 또박또박 박아쓴 빨간 학습장이 그 밑에 깔려있었다.

(그저 꿈같은 10톤소리.)

윤덕수는 아이들 숙제장을 번지듯 대수롭지 않게 벌컥벌컥 책장을 뒤적거렸다.

망골

작업반장이 오늘은 끝내 나에게 큰소리를 치고말았다.

《동문 전주대처럼 키만 멋없이 꺽두룩해가지구 하늘고추만큼 쬐꼬만 체네한테 꼭 쥐여서 넨장. 만날 일을 하는게 아니라 일을 치고있으니. 소풀밭을 몽땅 엎어놓고 이제 경영위원장이 오면 뭐라고 둘러대겠나? 오늘 공수는 미누스야. 미누스! 넨장.》

참. 맹랑한 일이다. 하루종일 남보다 두배, 세배로 팔이 떨어져나가게 일을 하고도 욕벌이니.

내가 춘림동무의 분조에 소속될 때 누군가 슬그머니 충고하였었다.

그 분조에 가면 공수를 벌지 못한다는것이였다.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였다. 뜨락또르운전수들속에서 숭숭 돌아가는 말을 나도 이미 들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분조에 내려갔다. 나는 독신이기때문에 공수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하게는 그 분조에 해방전 나의 아버지의 눈물이 고인 땅이 있었던것이였다.

처녀분조장인 선춘림은 까다롭고 이악쟁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중학생처럼 천진란만해보였다. 웃을 때마다 하이얀 덧이가 유표하게 반짝거렸다. (덧이가 곱게도 배겼는걸) 하고 나는 처음에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덧이앞에 두손을 번쩍 들고말았다. 처녀가 원 그렇게 이악살스러워서 누가 데려가겠는지 하던 동무들의 말이 괜한 걱정이 아닌듯싶었다.

춘림분조장은 가만 앉아있으면 몸살을 앓을만큼 발발이였다. 특히 그는 손이나 발보다도 머리가 부지런한 계획꾸러기이다. 그의 밑에 있으면 이것을 해라, 저것도 해달라 달달 볶이우는데 어느 사람이고 정신을 차릴새가 없었다. 다른 분조에 동원된 뜨락또르운전수들은 작업반장이 주는 공통적인 지시만 잘 집행하면 한공수 넉넉히 벌고 저녁이면 기타도 타고 이따금 이고장 토배기들이 담군 밥알이 동동 뜬 탁배기도 쩡하게 들이켰으나 나는 춘림분조장이 생각해내는 오만가지 《계획》을 수행하느라 언제나 쩔쩔매였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춘림은 날더러 작업반에서 소풀밭으로 떼여놓은 망골의 새초등판을 갈아엎어달라고 하였다.

《새초등판이야 소먹이풀판이 아니요?》

《경영위원장풀판이지요뭐. 그래서 갈아엎어야 해요.》

춘림은 사업일지를 딱 소리나게 접으면서 나를 보고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얼굴이 아니라 덧이가 웃는듯 했다.

《경영위원장 별명이 뭔지 알아요? 윤두소야요. 삼촌은 그저 소밖에 몰라요. 농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가 하느니라, 늘 이래요. 》

춘림분조장은 경영위원장의 조카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서인지 춘림의 랑만의 세계에는 언제나 경영위원장이 부정인물로 등장하군 한다.

《어쨌든 난 새초등판을 갈지 못하겠소.》

나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자 춘림은 분조장의 권한을 행사하는것이 아니라 그 천진한 눈빛으로 어린애처럼 나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맨 산천진데 소먹이감은 얼마든지 있다는것, 새초등판의 토양을 분석해봤는데 토질이 좋아서 소출이 높을거라는것, 수령님께서는 아까운 땅에 풀밭을 조성해서 소를 방목할 생각을 하지 말고 기계로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는것 등등 …

이쯤대면 누구든 견디여배길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작업반장에게서 애매한 추궁을 받고 시틋하여 합숙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서 솟아났는지 춘림분조장이 다람쥐처럼 뽀르르 달려왔다. 기준수치대로 갈아놓은 새초밭을 한번 더 갈아달라나. 이 등판은 2센치메터정도를 더 깊게 갈아야 소출이 제대로 나온다는지.

나는 덧이를 살짝살짝 드러내며 안달이 나서 콩당거리는 그를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에라 이왕지사 욕벌이를 한바엔 직성이 풀리게 말짱 들어준다 하고 선선히 뜨락또르를 끌고 새초등판에 다시 나갔다.

뜨락또르운전칸에 올라앉은 춘림은 향긋하게 구워낸 햇고구마를 나의 턱밑에 쑥 내밀었다. 내가 머리를 젓자 춘림은 고구마의 껍질을 발가 노오란 살을 닁큼 한입 깨물었다. 그리고는 냠냠 맛있게 먹어대며 조알조알 이야기를 내리엮기 시작했다.

《여기 새초등판을 왜 망골이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해방전에 한 지주가 여기 땅을 사서 소작인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대요.》

《그런데 해마다 농사가 망해서 망할놈의 골이라고 저주하며 모두가 이 땅을 떠나갔다오. 그때부터 여기는 망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버림을 받았지.》

《어마나. 그걸 어떻게?》

춘림은 고구마를 꼴깍 삼키며 놀라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싯 벌어진 입술사이로 덧이가 반짝거렸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뜨락또르만 몰아갔다.

해방전 이 망골에 뜨내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우리 부모들의 피절은 력사를 구태여 상기하고싶지 않았다.

《무렬동무. 난요. 이 망골을 이제 흥하는 골로 만들테야요. 망골을 논으로 풀면 새땅이 2정보. 그러면 알곡이 10톤 아니, 20톤…》

(헛참, 닭알을 보고 어미닭 몇마리이냐 식의 욕심꾸러기계산법이군.)

고구마 한알을 냉큼 다 먹고난 춘림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뜨락또르 우릉우릉 넓은 들에 달리구요

소리고운 종달새는 하늘높이 지저귀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뜨락또르에 매달아놓은 소방울에 가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넘겨주고간 옛 시대의 유물이였다.

딸랑, 딸랑- 내가 어렸을적에 소방울소리는 얼마나 요란했던가. 그러나 세월이 많이도 흘러간 오늘날 소방울소리는 이미 뜨락또르의 청높은 동음에 눌리워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있었다. 벌써 오래전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소방울소리를 타고 춘림의 말이 새삼스럽게 상기되였다.

《경영위원장 별명이 뭔지 알아요? 》

윤두소… 그가 혹시 이 소방울의 진짜 주인은 아닐가.

10톤

보름전부터 나는 춘림분조장에게 하루 한시간씩 뜨락또르를 배워주기 시작했다. 하도 졸라서 그러마 롱으로 한마디 했는데 그 이악한 덧이가 어찌나 극성으로 접어드는지 오늘은 제법 자기 운전기술을 구경하라고 나에게 뻐기기까지 하였다.

정말로 그의 운전기술은 나를 놀라게 했다.

《대단한데? 헌데 분조장일두 베찬데 뜨락또르까지 몰려우?》

《왜요? 난 뜨락똘을 하루 24시간 리용하자는거예요. 동무와 교대해서. 그래서 꼭 10톤을 하고야 말겠어요.》

춘림은 언제나 10톤밖에 몰랐다. 10톤을 위해서 별이 총총한 꼭두새벽에 남먼저 포전으로 달려나왔으며 10톤을 위해서 구슬알같은 자기의 땀방울을 온 벌판에 뿌리며 뛰여다녔다.

그야말로 10톤을 위해서 사는 처녀였다.

《정보당 10톤을 내기전에는 시집도 안갈테야요.》

나는 하하 큰 소리로 웃고말았다.

《그러다 꼬부랑할머니가 될 때까지 시집 못가게?》

내가 긴 허리를 꼬부라뜨리며 우스운 흉내를 피우는데 춘림은 진실로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이 되여버렸다.

《야, 그럼 어떡해요? 난 3년안엔 아니, 못해도 명년엔 10톤을 하자고 하는데…》

《동문 공상가로구만.》 나는 기특한 철부지학생에게 보내는듯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흥! 필요성이 가능성을 낳는댔어요. 농사를 지금보다 더 과학화하고 집약화하고 적기적작, 적지적작하면, 한마디로 주체농법을 철저히 지키면 얼마든지 될수 있어요. 내가 중요한 발견을 했는데 들어볼래요? 》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춘림은 농장대학에 특강을 내려온 농업대학 교수처럼 진지하게 론리를 세워가며 자기의 발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 모내기를 5월 25일전으로 하는데 알곡증산의 커다란 예비가 있다. 모를 5월 25일전으로 낸 논에서는 그 이후에 낸 논에서보다 정보당 벼가 한톤씩 더 난다. 이것은 우리 분조의 논들을 놓고 몇해동안 고심하여 얻은 결론이다. 우리 나라의 전체 논면적을 볼 때 5월 25일전으로 모내기를 다 끝내면 수십만톤의 벼를 더 얻는것으로 될것이다. 뜨락또르운전수들이 논갈이와 써레질을 제때에 잘하면 모내기를 5월 25일전으로 얼마든지 끝낼수 있다. 헌데 사람은 문제가 아닌데 기계들이 문제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철부지처럼 생각했던 그의 마음속에 온 나라가 들어앉아있는것이다!

저 처녀처럼 한톤씩, 한톤씩 비결을 찾아낸다면!

10톤은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것처럼 공허한 수자가 아니였다.

아니, 반드시 현실로 되여야 할, 될수 있는 수자인것이다.

《넥타이김》

넥타이는 남보기가 우선 좋으라고 앞에 매게끔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넥타이처럼 우리네 반장은 경영위원장이 보기 좋으라고 강냉이밭 《넥타이김》을 부지런히 맨다. 어떤 사람들은 《넥타이김》이라는 멋쟁이이름대신에 《경영위원장김》이라는 야박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물론 경영위원장이 지나가다 자주 들리는 밭의 김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것이다. 김을 매도 길바닥김부터(우리는 길옆의 밭에 난 김을 두고 넥타이김, 길바닥김이라고 부른다), 물을 줘도 비료를 주어도 길가주변의 밭부터…

언젠가 한 실없는 녀석이 강냉이로 태여나려거든 길바닥강냉이로 태여나거라 하고 읊조리다가 대추집할아버지한테 퉁을 맞을 일도 있었다.

어째서 춘림의 세계에 언제나 경영위원장이 부정인물로 등장하는지 이제는 의문이 가지 않았다.

오늘도 작업반장은 나에게 꽃밭같이 알뜰한 길바닥논을 한번 더 써래질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망골은요?》

나는 처음으로 작업지시에 대하여 반문하였다.

《넨장, 자네도 춘림이처럼 물어보누만. 거긴 소를 대서 후치질을 하라고 했네.》

잡초의 무성한 뿌리로 뒤덮혀있는 망골은 소로 후치를 해가지고서는 원만한 소출을 기대할수 없다. 이제 잠시후면 춘림이가 바로 그 순진한 눈과 이악한 덧이를 반짝거리며 나에게 나타날것이다. 그러면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와 함께 망골을 깊이, 더 깊이 갈아엎을것이다.

물론 10톤을 위해서.

나는 돌아서서 뜨락또르에 뛰여올랐다.

그리고는 확신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영위원장은 이 소방울의 주인이 아니다.

왜냐면 그는 절대로 그럴수 없는 사람이기때문이다.

수렁논

《난 못하겠소.》나는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야, 동문 전번 새초밭도 대담하게 갈아엎지 않았나요? 》

나는 그때 작업반장에게서 짜증섞인 추궁을 듣던 일이 생각되여 썩은 콩을 씹은듯 미간을 찌프리였다.

《이번엔 문제가 다르단말이요. 그러다 뜨락또르가 사고라도 나면…》

정말 그랬다. 나는 나의 뜨락또르가 언제나 나보다 더 건강하고 더 씩씩하며 활력에 넘쳐있기를 바란다. 뜨락또르는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 다음가는 귀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보리장마가 시작되여 미끄럽기 짝이 없는 그 가파로운 산길로 뜨락또르를 내몰라고 하니.

《야참. 저 앞산에서 석비레를 마저 실어와야 수렁논에도 모를 낼수 있겠는데. 사정 좀 들어줘요.》

춘림은 이번에도 부탁하고 조르는 식으로 나에게 매달렸다.

《뭐요? 동문 참, 참새에 굴레씌울 생각은 없소? 손바닥만 한 수렁논은 없는셈치오.》

《? ... 있는 땅을 어떻게 없는셈쳐요? 》

《어쨌든 난 못하겠소.》나는 단호하게 손을 내리그었다.

《그럼… 10톤은요?!》춘림의 마지막말이 돌덩이처럼 날아와 내 심장을 텅 울리고 튀여났다.

나는 춘림의 맑은 눈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꾹 눌러썼다. 그리곤 대답도 없이 힝 돌아서버렸다. 나에겐 뜨락또르가 너무도 소중했던것이다.

춘림이 수렁논에 들어서고있었다.

나는 황황히 그를 막아나섰다.

《아직 석비레를 더 깔아야 하지 않소?》

《그럼 10톤은요?》춘림은 이런 단순하고 자명한것도 동문 모르나요 하는 이상한 눈길로 나를 스쳐보고 곧장 수렁논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몇걸음 가지 않아 푹 앞으로 꼬꾸라져넘어졌다. 아직 농사를 짓기에는 준비되지 못한 논이였다.

《춘림이, 나오라. 내가 석비레를 실어올게.》

나는 큰 소리로 누이동생에게 말하듯 소리쳤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춘림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논판으로 걸어들어갔다.

《나오라아-》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쳤다. ...

《툭!》

누군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꿈이였다.

1분조 뜨락또르운전수가 나를 두들겨 일으켜세웠다.

《무렬이, 야단났어. 사고가 났어.》

나는 륙감적으로 (앗! 뜨락또르!)하고 생각했다.

《춘림분조장이 간밤에 뜨락또르를 몰고 비탈길을 내리다가 그만… 춘림동무가 심하게 다쳤다는데… 》

그뒤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내의바람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벌써 나의 뜨락또르는 다른 뜨락또르에 끌리워 작업반 농업과학기술지식선전실마당으로 들어서고있었다. 전조등이 깨여져나가고 앞대가리가 불품없이 쭈그러들어있었다. 대사고였다. 뜨락또르의 처참한 모양을 보는 순간 나는 리성을 잃고말았다. 나는 동료들이 말리는것을 휘뿌려던지고 춘림이 실려갔다는 리인민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팔에 붕대를 감고 비스듬히 누워있던 춘림은 나를 보자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내 뜨락또르를 살려내라아 하고 소리치고싶었으나 하얀 붕대를 보는 순간 금시 튀여나오는 그 말을 꿀꺽 삼켜버리고말았다. 대신 에익- 하고 모자를 움켜쥐고 다시 한달음에 분조로 내려오고 말았다.

소방울소리

로동수단을 잃어버린 나에게 작업반장은 선심이나 쓰는듯이 살찐 황소의 고삐를 쥐여주었다.

《옛날같으문 이런 소 한짝이면 부자축에 들었다네. 소가 반질반질한게 힘꼴깨나 쓸게야.》

나는 속이 달아 마뜩지 않게 황소를 흘겨보았다.

《말씀드린 뜨락또르부속품은요?》

《인츰 해결해주겠대. 아무렴 경영위원장이 제 조카일에 모르쇠할라구. 헌데 이 바쁜 모내기고비는 소라두 동원해서 넘기고 보라누만. 1작업반 뜨락또르도 말썽이 생겨 나흘째 세워두고있는판이니. 넨장, 모내기를 제철에 끝내긴 글렀어.》

나는 분격하였다.

《난 경영위원장동지가 정말 리해되지 않습니다. 뜨락또르들을 시퍼렇게 세워놓고 어떻게 인력으로 써레질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지 않아도 뜨락또르가 자주 고장이 나는데 농장에 자그마한 수리소같은것을 차려놓고 기능공 두어명을 배당해놓으면 해결될텐데 그저 뼈심으로 일해야 한다는 소리뿐이니. …

농사라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로동인지 경영위원장동진 모른단 말입니까?》

이것은 춘림이가 언젠가 나에게 했던 말이였다.

《이사람. 그런 말 말게. 멍에밑에서 뼈대를 굳히운 사람이야.》

반장은 의미를 알수 없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헌데 사람이 좀 달라졌거든, 넨장- 》하고 중얼거리며 가버렸다.

소를 앞세우고 밭으로 나가면서 나는 과거를 거슬러 걸어가는듯 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침이슬에 축축하게 바지가랭이가 젖어들었다. 뽀얀 안개가 싱싱한 향기를 풍기는 대지를 살틀히 애무하며 떠돌고있었다.

밭머리에 이르러 나는 작업에 착수할념을 잊고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서툴게 담배를 말았다. 한모금 빨기 바쁘게 거부반응이 세차게 일어났다. 《컹컹-》 나는 아직까지도 좀처럼 담배를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것을 요즈음에는 무슨 줄담배군이나 된듯 줄창 담배만 입에 물고다닌다. 나는 이것이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 그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고도 또 다른 리유가 있음을 나는 감각으로 느끼고있었다.

춘림이 없는 들판, 그것은 종다리가 없는 그야말로 한적한 들판이였다. 땀을 빨빨 흘리며 뛰여다니는 춘림의 총총한 발자국소리, 끝없는 공상의 속살거림, 눈코뜰새없이 산더미같은 일감을 맡겨놓고는 미안하여 어쩔바를 모르던 티없이 맑은 눈빛… 이 모든것이 지금은 내곁에 없었다. 춘림이가 지금 무엇을 할가. 농번기에 침대에 누워있자니, 그것도 석달씩이나 안정치료를 해야 한다니 속이 새까맣게 타겠지.

나는 이제 춘림을 만나면 정식으로 사죄하리라 속다짐했다. 뜨락또르가 상한것은 가슴아파하면서도 춘림이 변을 당한것은 관심에도 두지 못했던것이다. 내가 병원에서 찬바람을 일구며 튀여나올 때 얼마나 나를 원망했으랴.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10톤의 꿈을 위해 더는 나에게 조르지 않겠구나 생각하니 오장이 순간에 텅 들리워나가는듯 허전해왔다.

춘림이가 없어 한가하게 지내게 되니 오히려 흘러가는 생활이 의미를 잃어버린듯 했다.

나는 손에 서툰 보탑을 쥐고 밭을 갈아나가기 시작했다. 이마빡만 한 뙈기밭에서 오전내껏의 시간이 날아나버렸다. 더우기 손바닥에 물집이 지고 어깨가 떨어져나가는듯이 쑤셔났다.

나는 점심먹을 맥도 없어 해볕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자갈밭에 넙적 엎드려버렸다.

어머니가 들려주던 불쌍한 윤두소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해방전 왕신마을에 욕심이 앞산만 한 지주놈이 살았단다. 지주놈은 죽은 자기 집 윤두소대신에 나어린 청년을 끌어오지 않았겠니. 그리곤 소방울을 매달아서 밭으로 내몰았구나. 연약한 청년은 낮에도 밤에도 남의 집 밭을 갈아주느라 지치고 또 지쳐버렸단다. 어느날 밭머리에 쓰러진 그는 소보다 못한 자기의 인생을 저주하며 고향을 떠나버리고말았지. 너의 아버지는 그 청년이 도망간것을 지주놈이 모르게 하느라고 온밤 빈 밭에서 소방울소리를 울렸구나. 그날 새벽 온몸이 밤이슬에 젖어 와들와들 떨면서 들어온 너의 아버지의 손에 바로 그 청년의 소방울이 들려있었단다.》

《어머니. 난 기계로 소를 대신하는 뜨락똘운전수가 되겠어요.》

나는 불쌍한 그 청년을 마음속으로 끝없이 동정하며 기계화의 초병이 되였다. 그리고 불쌍한 그 청년의 소방울을 뜨락또르에 달아놓았다. 뜨락또르의 드높은 동음속에서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던 소방울소리가 오늘은 나의 귀전에서 요란하게 절랑거리는듯 했다.

기계화의 시대에 소시대를 고집하는 경영위원장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경영위원장의 인생을 제나름으로 상상해보았다. 머슴으로부터 한개군 경영위원장으로.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의 삶이 아닌가. 하기야 어버이수령님품에서 우리 인민모두가 노예로부터 존엄높은 자주적인민으로의 인생의 전환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인간을 사회정치적구속뿐이 아니라 자연의 온갖 구속에서도 완전히 해방하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뜻이다. 때문에 수령님께서는 독창적인 3대기술혁명방침을 제시하신것이다. 기계화를 적극 추진시켜 농업로동을 공업화하면 알곡소출도 늘이고 능률도 높이게 되며 농민들이 힘든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여 로동이 노래로, 기쁨으로 될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아름다운 미래가 경영위원장에게는 아무런 관계도 없단말인가. 일군들은 농민들의 고통과 그들의 넘쳐나는 지혜의 샘과 열정을 전혀 보지 못하고있으며 길바닥일군으로 물우에 뜬 기름처럼 되고있다.

당의 호소를 받들고 가는곳마다에서 기술혁신이 일어나고있는 이때 이렇게 수동적으로 농사를 짓는것은 죄악이다. 내 힘으로라도 뜨락또르를 살려내고말테다.

나는 자갈밭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동무가?》

내앞에서는 사랑스러운 덧이가 활짝 웃고있었다. 그옆에는 묵직한 배낭이 놓여있었다.

뜨락또르부속품들이였다.

나를 바라보는 춘림의 맑은 눈빛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것 같았다.

《날 용서하지요? 》

그 눈빛을 향해 황황 불타는 나의 심장은 이렇게 대답하고있었다.

(난 사랑하오. 동무의 소중한 그 10톤의 꿈을, 아침이슬과도 같은 동무의 땀방울을, 붕대안에 숨긴 동무의 그 아픔과 그리고 동무의 반짝이는 그 하얀 덧이까지도. )

나는 배낭을 와락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오래간만에 시름잊고 웃었다. 나와 춘림의 웃음소리가 눈부신 해살사이로 퍼져나갔다.

4

윤덕수는 더이상 글줄을 읽을수가 없었다.

운전칸안에 매달아놓은 소방울이 눈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있었다. 과연 30년전의 소방울이 아직도 살아있단말인가.

어제날의 소방울소리는 덕수의 가슴속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높아가는 행복의 웃음소리에 묻히여 그 소리는 영영 자취를 감추어버리고말았었다. 그런데 한 청년의 가슴속에 아직도 그 소방울소리가 살아있는것이다.

아, 정녕 그 피눈물의 세월을 내가 잊고살았던가.

두터운 락엽을 쓰고 잠자고있던 어제날의 쓰라린 추억이 어렴풋이, 그다음은 뚜렷하게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방전 덕수의 아버지는 왕신리 시골지주의 머슴군이였다.

지주놈은 윤두소를 돌려가며 집집마다 밭을 갈아주고 가을에 비싼 값으로 소값을 받아내는 재미에 불이 일게 덕수 아버지의 손에 윤두소의 고삐를 쥐여주어 소작농들의 밭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히영히영 힘을 잘 쓰던 소가 어느날 엿덩이처럼 땅에 늘어붙어앉아서 멍청한 빛으로 먼산만 바라보며 진득한 침을 흘리였다.

《이 소도 때가 된 모양이다.》 누군가 하는 말에 덕수의 아버지는 코마루가 시큰하였다. 자기와 함께 산전수전을 겪어온 소였다.

덕수 아버지는 낮이나 밤이나 소옆을 떠날줄 몰랐다.

소는 삼일 낮 삼일 밤 맥없이 앓더니 끝내는 덕수아버지의 무릎아래서 죽어버리고말았다.

덕수아버지는 주먹같은 눈물을 뚤렁뚤렁 떨구며 소방울만 손에 든채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인지 탁주인지 모를 뿌연 물을 련이어 들이키더니 아예 자리에 누워버리고말았다.

지주는 덕수아버지가 살인이나 친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나 뒤여질 노릇이지 소를 도륙내? 응? 응? 네 이놈, 멕여주구 이, 입혀주니까 도, 도살을 해? 기어이 네놈에게서 소값을 받아내고야 말테다.》

덕수아버지는 매일 문지방이 깨져나가게 발을 굴러대는 지주의 꼴을 더는 보기가 싫었던지 원한 많은 세상을 비명에 떠나가고말았다.

지주놈은 하루 아침에 생때같은 가장을 잃은 명줄 끊긴 덕수네 집에 와서 강다짐으로 덕수를 끌어내며 야단질을 쳤다.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들로 나가는 법이야. 애비가 죽었으니 맏놈이라도 내 집에서 윤두소노릇을 하며 소값을 물어야겠다.》

이리하여 덕수는 열네살 청춘의 문어구에서 지주집 억압의 솟을대문밑으로 들어갔다.

《저놈은 윤두소보담 더 리득이 나는 놈이야. 소처럼 콩여물을 달래길 하나, 북데길 갈아달라고 하나, 똥을 춰달라고 하나.… 히히, 이름두 신통하지. 윤덕수나 윤두소나 같구같질 않아. 석전경우라고 저놈은 날 때부터 윤두소로 점지된 황해도누룽소라니.》

온종일 밭을 갈고나면 온몸은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지주놈은 어린 덕수가 앉아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인다고 그의 목에 소방울을 매달았다. 자기가 나타나는 임의의 시각에 방울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그날 덕수에게는 귀밀밥도 차례지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나이였지만 몸에 축적된 힘이 너무도 부족했다.

뼈를 굳혀야 할 시기였지만 그러기에는 어깨우에 실리는 멍에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축축히 비내리는 어느날 밤 밭을 갈아나가던 덕수는 이랑우에 쓰러졌다. 어깨가 깨져나가듯 저리고 배가 고팠다. 너무도 차거운 땅에 씁쓸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멍에밑의 인생, 소나 말보다 못한 학대속에 사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참하여 소리내여 울었다.

아, 차라리 나도 물이였으면. 물이 되여 땅속에 스며들어 영영 이 고된 세상에 솟구치지 말았으면. 땅속에서 이 모든걸 잊고 자유롭게 흘렀으면…

자기를 짓누르고있는 세상에서 제일 무겁고 잔인하고 숨가쁜 이 구속과 압박에서 벗어나고싶었다. 지주놈을 위해서 쉼없이 울려야 했던 이 소방울소리로부터 멀리로, 멀리로 달아나고싶었다.

그렇다. 도망치자. 이 세상 한끝이라도 좋다. 지주놈만 없다면! 덕수는 소방울을 나꿔채여 어둠속에 홱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고마운 사람이 자기를 위해 온밤 소방울을 울려주었으며 한 청년이 불쌍한 윤두소청년을 동정하며 지금껏 마음속에 소방울을 안고살고있다는것도 모르고 덕수는 행복에 취해 소방울소리로부터 너무도 멀리로 달아나버린것이였다.

언제부터인지 밖에서는 쭈륵, 쭈르륵 가을비가 내리고있었다. 바로 윤덕수가 구속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도망치던 그 밤처럼…

윤덕수는 소방울을 들고 뜨락또르에서 내리였다.

어서 빨리 무렬을 찾아가자. 그와 함께 어버이수령님께서 기다리고계시는 훌륭한 토론원고를 쓰자. 날이 더 저물기 전에.

5

《퉁퉁퉁》

《풍년》호뜨락또르가 거름을 가득 싣고 농촌길을 달리고있었다.

이 나라 어느 농촌에 가나 흔히 볼수 있는 례사로운 풍경이였다.

그러나 그 뜨락또르안에는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청년이 가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입당을 보증해주시고 존엄높은 도당전원회의의 연단에까지 높이 내세워주신 자랑높은 농촌의 기계화초병이 가슴터질듯 한 환희와 감격을 안고 가고있었다.

수령님과 함께 무릎을 맞대고 나라의 농업생산계획을 의논한 장하고도 위대한 인민의 한사람을 파도치는 풍년벌이 기쁘게 반기고있었다.

바로 그 옆자리에는 잔뼈를 굳힌 고향땅을 찾아가는 일군이 앉아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준절히 이르시던 말씀을 덕수는 또박또박 심장에 쪼아박아넣었다.

《옛날의 봉건관료들은 모두 군중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또 들어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군중의 의견이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군중을 떠나고 현실과 떨어져 책상머리에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옛날의 통치배들처럼 관료화되고 맙니다.…

혁명사업에서 기적을 안아오는 묘술은 다 군중속에 있습니다. 동무들은 군중우에 군림한 관료가 될것이 아니라 군중에게서 배우는 학생, 군중을 섬기는 심부름군이 되여야 합니다. 혁명을 떠밀고나가는 가장 강력한 절대의 힘이 바로 인민대중이라는것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합니다.》

덕수는 배낭을 꾸리였다.

군중속으로! 이것은 윤덕수의 한생의 좌우명으로 될것이였다.

덕수의 배낭속에서 딸랑- 소방울소리가 울려나왔다. 새로운 더 많은 기계를 창안하고 발명하여 온 들판을 기계로 덮을 때까지, 농민들이 더는 허리아픔을 느끼지 않고 모를 내고 가을걷이를 하고 유해로운 로동조건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그리고 쌀이 넘쳐나는 나라로 되여 우리 인민이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인민으로 되는 그날까지 소방울소리는 계속 울릴것이다.

덕수에게 일군의 자각을 새겨주는 준절한 경종소리가 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