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최일천과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2021.11.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는 최일천이 해방후에 쓴 책입니다.》 (김일성전집》제93권 365페지)

조국해방의 날을 맞을 때마다 우리 인민과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을 더욱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군 한다.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준 해방의 은인을 력사앞에, 세계앞에 널리 선전하고 칭송한 애국적인 문필가들중에는 최일천선생(1905~1950, 본명은 최찬선)도 있다.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어린 나이에 고향땅인 정주를 떠난 그는 빼앗긴 나라를 찾는 길에 한생을 바치리라 결심다지고 일찌기 독립운동에 나섰지만 명확한 투쟁의 길을 찾지 못한채 중국 동북지방의 외진 마을인 오가자에 주저앉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있었다.

그는 주체16(1927)년 1월 길림에서 독립군사령이였던 오동진의 소개로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웠다. 그후 그는 오가자의 삼성학교에서 교원으로 있으면서 주체19(1930)년 가을 오가자농촌마을의 혁명화를 위하여 이곳에 오신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그는 오가자반제청년동맹위원장, 잡지《농우》의 주필로 사업하면서 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하여 힘썼다.

그리고 주체20(1931)년 12월부터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중국의 장춘과 베이징, 심양 등지에서 《동아일보》지국장 및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반제청년동맹을 비롯한 지하혁명조직에 계속 관여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자료들을 꾸준히 수집하였으며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전과를 널리 소개하였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력사, 절세의 위인의 력사를 후세에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것은 항상 그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신념이였다.

그의 이러한 신념을 반영한것이 바로 해방후 출판한 도서《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였다.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집필, 그것은 단순한 력사의 기록이 아니였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애국의 력사를 지키고 후손만대에 빛내이는 성스러운 민족사적위업이였고 민족의 령도자의 두리에 조선인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한 숭고한 애국사업이였다.

해방직후에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뭇고 장군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려 광장을 떠나지 않는 인민들의 뜨거운 흠모의 마음을 느끼면서 그는 우리 민족이 낳은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서술한 책을 하루빨리 써내야겠다는 시대적사명감을 더욱 굳게 간직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동방문화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하기 위하여 최형우라는 필명으로 도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를 집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해방후 《애국자》, 《혁명가》로 자처해나선 어중이떠중이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오도하고 그에 대한 집필을 각방으로 방해하여나섰다.

최일천선생은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력사에 흙칠을 하려는 나쁜 놈들의 죄행을 단죄하고 새로운 혁명력사자료들을 찾아내면서 낮에 밤을 이어 정력적인 집필활동을 벌리였다.

최일천선생의 피타는 노력이 있어 드디여 주체34(1945)년 12월에 21개 장에 달하는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 제1집이 나왔고 련이어 16개 장에 달하는 제2집이 출판되였다.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가 출판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항일의 전설적영웅, 민족의 태양으로서의 어버이수령님의 위인적풍모와 불멸의 투쟁업적에 대하여 깊이 알게 되였으며 수령님의 초기혁명활동력사의 한부분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립될수 있었다.

그가 짧은 기간에 피타는 노력을 기울여 집필한 도서《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는 전체 조선민족을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숭배심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1930년대초 오가자에서 태양의 품에 안겨 혁명의 첫 걸음을 뗀 최일천선생의 한생과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조국해방업적을 해방후 처음으로 도서로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은 그의 공적은 오늘도 후대들의 마음속에 남아 빛을 뿌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