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석왕사중의 탄복

 2019.6.1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를 비롯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계시며 지어 종교교리에 대하여서까지 잘 알고계십니다.》 (김정일전집》 제13권 155페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를 비롯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계시였으며 지어 종교교리에 대하여서까지 잘 알고계신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이것은 석왕사중의 탄복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석왕사는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 설봉산기슭에 있는 고려말에 처음 세우고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확장하여 지은 절이다.

불이문
그림. 불이문

석왕사는 14세기 후반기에 고령의 무학대사가 처음 지은 후 조선봉건왕조 500년간 더욱 번창하게 확대되였다.

우리 선조들이 피땀으로 이룩하여놓은 문화유산을 한없이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6(1947)년 9월 하순 어느날 석왕사를 찾으시였다.

오신다는 기별도 없이 찾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여 더없이 당황한것은 석왕사의 중이였다.

그는 비록 《속세》를 떠나 이 산중에서 《부처님》만을 믿고 사는지가 오래되였지만 만민이 우러러받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어오던터였고 조국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된 조국땅우에 펼치시는 천지개벽의 력사를 온몸으로 느끼고있는지라 수령님에 대한 흠모의 마음이 뜨거웠다.

그도 조선사람이요, 조선의 중인지라 비록 《속세》를 떠난 몸이긴 하지만 해방전 민족이 당하는 수난을 두고 은연중 민족적의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웃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이 절에 찾아와 《부처님》앞에 재난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지성을 드릴 때 그들의 가긍한 정상이 가슴을 울리여 속으로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중이였다.

너무나도 의지할 곳이 없던나머지 숨막히고 답답한 심정을 《부처님》앞에 하소연해보는 불쌍한 사람들이였지만 부처는 의연히 한모습으로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절절한 념원이였던 조국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셨고 인민이 주인이 된 새 조국을 세우시여 땅없는 농민들에게는 땅을 주시고 인민들이 품고있는 소원이란 소원은 다 풀어주고계시는것이였다.

그래서 중은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김일성장군님을 한번 만나뵈웠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가슴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석왕사를 찾아오시였으니 중은 기뻐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중은 이것이 생시인지 꿈인지 분간할수조차 없었다.

길다란 장삼소매자락에 목탁을 넣고 다니면서 념불을 외우는것밖에 모르던 중이 어떻게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있을 때 석왕사를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석왕사의 첫입구인 《불이문》앞에 이르시여 멈추어서시였다.

《불이문》은 석왕사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건너놓은 무지개모양의 돌다리우에 1751년에 세운것으로 전해지는 아담한 다리집으로 된 문루였다.

중은 위대한 수령님께 머리숙여 깊은 절을 올리였다.

안내하던 일군이 석왕사를 관리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어떻게 지내는가고 생활형편을 물으시였다.

장군님! 장군님의 덕분으로 이 미천한 몸도 근심걱정없이 잘 지내고있습니다.》

중은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물으심에 눈물이 핑 돌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손을 허리에 가볍게 얹으시고 문각우에 써붙인 《불이문》이라는 세글자를 읽으시고나서 중에게 왜 이 문각을 《불이문》이라고 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중은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석왕사의 중으로서 이곳에서 오래 살아오면서도 그 문각의 뜻을 생각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여기에 이런 문이 하나뿐이여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것 같습니다.》

중은 자신이 없어 머뭇머뭇 말씀을 올리였다.

그의 확신없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잘 리해가 되지 않으시는듯 머리를 흔드시면서 뜻이 그렇게 단순할수는 없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먼 하늘가로 시선을 보내시며 깊은 사색의 세계를 더듬어나가시는것이였다.

이윽고 중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문을 별스럽게 세워놓고 그 이름을 《불이문》이라고 한데는 종교적인 뜻이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자신께서 《불이문》의 뜻을 말해보겠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이문》이란 절은 신성한 곳이고 인간사회는 《속된 세상》이라고 하여 그것을 갈라놓는 경계문이라고 본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이 그러했다. 불교를 신성시하고 우상화하기 위하여 애쓴 불교신자들이 석왕사의 첫입구인 문을 단순히 다른 문들과 형식상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문이름을 《불이문》이라고 달았을리는 없었다.

그는 30여년간 목탁을 두드리면서도 《불이문》의 뜻을 해득하지 못하였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순간에 이처럼 명철하게 해석하시는것이였다.

과시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것을 환히 꿰뚫어보시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며 천재중의 천재이시다. 이런 비범성을 지니셨기에 거꾸로섰던 세상도 바로잡아주시고 구세제민의 태양으로 이 나라의 앞길을 밝히시는것이 아닌가?

중은 위대한 수령님의 비상한 예지와 판단력에 탄복하여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