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오순희
2023.2.11.
천리마시대에 온 나라가 다 아는 한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방하수.
나라앞에 큰 공을 세운것도 아니고, 평범한 부모의 자식에 불과하였던 그가 기적같은 두번째 생명을 받아안은 후 온 나라 누구나가 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된것이다.
낳아키운 부모들까지도 이제는 다된 자식이라고 맥을 놓고있을 때 소년의 작은 심장의 박동소리를 계속 이어주시고 티없이 맑은 웃음을 그 귀여운 얼굴가득히 피여준 기적의 힘은 과연 그 무엇이였던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보건일군들은 직업상 특성으로 보나 맡겨진 임무의 중요성으로 보아 누구보다 먼저 공산주의자가 되여야 하며 그것도 가장 철저한 공산주의자가 되여야 합니다.》 (《김일성전집》 제27권 249페지)
8살 철부지였던 방하수소년이 전신 48%의 3도화상을 당하고 중태에 빠져 흥남비료(당시)공장병원으로 실려간것은 주체49(1960)년 11월 13일이였다.
그후 석달 남짓한 기간에 병원의료일군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정성,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살로써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난 방하수소년은 날이 다르게 건강을 회복해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흥남비료공장병원에서 방하수소년을 살리기 위하여 피부이식수술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을 《민주청년》(당시)신문지상에서 읽으시고 매우 기뻐하시며 즉시에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시고 그 기사를 꼭 읽어볼데 대하여서와 《로동신문》에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그에 대한 기사를 줄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석달후에는 병원의료일군들의 사업을 높이 평가하시여 축하의 편지와 함께 방하수소년의 병치료에 쓸 약까지 보내주시였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한 사상정신적풍모를 실지행동으로써 보여준 아름다운 소행이라시며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축하편지에서 의료일군들은 무한한 격동과 고무적힘을 받아안았다.
의사, 간호원들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하여, 로동당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참다운 지성으로 하여 방하수는 반드시 회복되여 당과 수령님의 충실한 아들로 성장하게 될것이라는 신심을 안고 더 대담하고 과학적인 치료를 벌려나갔다.
방하수소년과 병원의료일군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주체50(1961)년 3월 7일에 있은 전국로농통신원열성자대회에는 함흥의학대학병원의 한 간호원도 참가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의 휴식시간에 그 간호원과 담화를 하시다가 방하수의 건강과 이식수술에 참가한 사람들의 그후 건강에 대하여 세세히 물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거듭되는 뜨거운 보살피심은 의료일군들에게 끝없는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3차, 4차 이식수술의 성과적인 진행결과 방하수는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던 사경에서 벗어났을뿐 아니라 마침내 이전의 그 귀여운 모습그대로 사람들앞에 나서게 되였다.
그날은 5월 7일이였다.
화상을 당한 때로부터 반년만에 방하수는 드디여 자기의 모습을 되찾고, 아니 더 밝고 더 귀여워진 모습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비날론공장(당시)준공식을 경축하는 함흥시군중대회장의 주석단에 오르게 되였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문턱에 있던 그가 꽃다발을 들고 한걸음한걸음 꿈결에도 생각지 못했던 영광의 최절정에로 오르는 순간을 온 나라가 감격에 넘쳐 함께 맞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꽃다발을 올리고나서 힘차게 소년단인사를 드리는 방하수소년을 기쁨에 넘쳐 바라보시며 《항상준비! 항상준비!》하시고는 소년을 부둥켜안으신채 오래동안 놓으실줄 몰라하시였다.
그 시각 위대한 수령님의 안광에도, 광장에 모인 수만군중의 눈에도 뜨거운것이 가득 고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흥분된 어조로 이 애가 방하수라고, 거의 죽었던 아이가 살아났다고, 로동당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방하수소년의 자그마한 손을 잡아흔드시면서 힘껏 손을 흔들라고, 더 높이 크게 흔들라고 격려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병원의 외과과장을 몸가까이에 불러주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 동무가 자기 살을 떼여 환자에게 붙여준 동무라고, 바로 이런 사람이 공산주의자라고 몇번씩이나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모자라신듯 또다시 그에게 로동당시대의 공산주의혁명가라는 값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주석단을 향하여 멈춰서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 또 부르는 시위대렬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량옆에 서있는 과장과 피부이식에 나섰던 함흥의학대학 학생의 손을 버쩍 추켜드시였다.
그날 저녁 병원의 의료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함경남도 도립예술극장(당시)에서 가극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관람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관람이 끝난 후 병원의 의료일군들을 부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일을 잘하였다고, 자본주의사회라면 하수소년은 살수 없었을것이라고 가슴아픈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병원사업이 잘된것은 병원이 공업도시 흥남로동계급속에 있었기때문이라고 하시며 로동계급과 그들속에 있는 의료일군들의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대담성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한달후에 열린 전국보건부문일군열성자회의에서 전체 보건의료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게 되였다.
보건일군들에게서 가장 중요한것은 당과 인민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환자에 대한 끝없는 정성이며 보건일군들이 다만 병을 고치는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락후한 사람들을 교양하고 개조하는 선전자적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전체 보건일군들을 무한히 격동시켰고 고무해주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힘의 원천으로, 행동의 지침으로 되였다.
방하수소년이 받아안은 두번째 생명, 그 기적을 안아온 힘은 의사가 되기 전에 공산주의자가 되여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과 인간에 대한 그이의 지극한 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