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수골의 구호나무들을 발굴하도록 이끄시여

 2021.4.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1986년에 백두산지구를 돌아보다가 백두산밀영이 있던 곳까지 직접 가서 이 근방에 밀영이 있던 자리가 있을것이니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해당 부문일군들이 그곳에서 집자리도 찾아내고 구호나무들도 찾아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87권 418~419페지)

백두산밀영은 1930년대 후반기와 1940년대 전반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면서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가신 조선혁명의 본거지, 중심적령도거점이였다.

그런데 항일무장투쟁시기 우리 혁명의 심장부였던 백두산밀영은 나라가 해방이 된 후에도 오랜 세월의 이끼속에 묻혀 좀처럼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놓지 않고있었다.

그것은 백두산밀영이 산세가 험한 천고의 원시림속에 자리잡고있었던것과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들을 그때 절대비밀에 붙이였던 관계로 다른 사람들은 그 위치를 알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백두산밀영을 찾아내기 위하여 깊이 마음써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에는 건당, 건국, 건군사업을 하시느라 그후에는 미제를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령도하시느라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시여 여러차례에 걸쳐 항일무장투쟁시기 밀영들을 건설한 항일혁명투사 박영순동지를 두차례나 파견하시였고 그후에는 김일동지를 보내시였다.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은 소백수를 끼고있고 가까운 곳에 곰산이 있으며 그 일대에 온천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중 어느 하나라도 나지면 그 지구에서 밀영을 찾을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군 하시였다.

그러나 온천도 찾아내고 소백수줄기도 답사했지만 백두산밀영은 종시 찾지 못하였다. 소백수가 스치고 흐르는 수십갈래의 골짜기들은 여름이면 울창한 숲에 뒤덮이고 겨울이면 깊은 눈속에 묻히는데 더구나 항일혁명투사들이 자연적으로 잘 은페된 곳을 고르고 또 골라 밀영을 건설하였기때문이였다.

그러던 1980년대 중엽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나가는 문제가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제기되고있던 당시의 조건에서 백두산밀영을 발굴하는것을 더는 미룰수 없는 력사적과제로 보시고 이 일을 꼭 자신께서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주체75(1986)년 8월 어느날 삼복의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량강도의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의 소백수골 다리목을 지나시다가 저 골안이 낯이 익다고 하시면서 그 골짜기를 잘 조사하여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받들고 백두산밀영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조사사업을 방대한 규모에서 적극적으로 벌려나가던 이 부문 일군들은 주체75(1986)년 9월 25일에 천고의 밀림이 들어앉은 소백수골안에서 첫 껍질벗긴 분비나무강대를 발견하게 되였다.

일정한 높이로 규모있게 껍질을 벗긴 강대에는 도끼자국이나 칼자국 같기도 한 흔적이 확연히 나타나있었다.

누가 이 깊은 수림속에 들어와서 무슨 일로 나무껍질을 벗겼을것인가, 백두산기슭의 수림속에 분비, 가문비는 어데 가나 있는것이기때문에 설사 나무껍질이 필요하면 마을뒤산에 올라가도 얼마든지 벗길수 있는데 구태여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골짜기의 막바지까지 들어올 필요가 있겠는가.

연구를 심화시켜나가던 일군은 껍질을 벗긴 형태와 방법이 청봉, 베개봉숙영지의 구호나무와 비슷하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며 면밀한 분석을 거쳐 그것이 구호나무라는것을 확인하였다.

구호나무에 이어 귀틀집자리, 우등불자리를 비롯한 유적과 유물들을 련속 찾아낸 일군들은 백두산밀영과 그 일대 비밀근거지들에 대한 발굴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중한 사적물들이 발굴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사적내용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발굴사업을 세심히 이끌어주시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긴긴 세월 나무진에 덮히고 비바람에 부식되여 본래의 형체를 찾아볼수 없는 껍질벗긴 나무에서 구호글씨를 현출할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시고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혁명사적보존연구소의 과학자들을 현지에 파견해주시였다.

이곳 과학자들은 주체66(1977)년 4월에 구호나무글자의 현출방법을 찾아낼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청봉숙영지의 껍질벗긴 나무에서 처음으로 구호나무의 글발을 찾아내여 그것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어려운 연구사업을 한 귀중한 경험을 가지고있었다.

이 귀중한 경험에 토대하여 그들은 구호나무에 쓴 구호들이 다 지워져서 이제는 눈으로 직접 볼수 없지만 방안에서 형광투광의 방법으로 볼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6(1987)년 5월 백두산밀영주변의 껍질벗긴 나무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남긴 혁명적구호문헌이 현출되였다는것을 료해하시고 밀영주변에서 혁명적구호문헌을 찾아낸것은 대단히 큰 의의가 있다고 하시면서 구호문헌발굴사업을 전국적판도에서 폭넓게 벌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주체77(1988)년 8월 10일 새로 꾸려진 백두산밀영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호나무의 글자를 볼수 있게 꾸려놓은 방에서 〈만고의 령장 김대장 만세〉, 〈일군병사들 투항하라 일행천리축지법쓰는 장수 백두산에 출현〉, 〈백두산에 축지법 쓰는 장수 내렸다〉고 쓴 구호를 비롯하여 그밖의 구호들을 보아주시고 오래동안 눈비에 씻겨 보이지 않게 된 구호나무의 구호들을 형광투광의 방법으로 볼수 있게 한 과학원 함흥분원 혁명사적보존연구소 과학자들이 중요한것을 연구하였다고 높이 평가하시고 구호나무의 글자들을 형광투광하여 볼수 있는 방법을 연구개발한 조건에서 이제는 구호나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글자들을 다른 장치가 없이 눈으로 직접 볼수 있는 방법을 연구완성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어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7(1988)년 8월 31일 과학원 과학전시관을 찾으시고 구호나무의 구호를 형광투광장치가 없이 눈으로 직접 볼수 있게 로출시키는 방법을 연구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그후 연구사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형광투광장치가 없이도 시약을 가지고 구호문헌을 원상대로 로출시키는 과학연구성과가 이룩되게 되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백두산밀영주변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친히 쓰신 《백두산에 장수별 떴다 백두산장수별 삼천리를 비친다》, 《헐벗고 천대받는 조선녀인들 모두 일어나 항일전에 참가하자 남존녀비반대 녀성해방만세》를 비롯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쓴 《백두산에 축지법 쓰는 장수 내렸다》, 《2천만 조선동포 모두 일어나 항일전에 참가하자》, 《강도 일제 쳐물리치고 우리 나라 도로 찾자 무산대중 일어나서 로농정부 세우자》, 《백두산 제일봉 금강산 제일경 금수강산 우리 나라 왜놈치고 도로 찾자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민중은 단결하라》 등의 혁명적구호문헌들이 발굴되게 되였다.

이와 함께 전국도처에서 항일선렬들의 숭고한 혁명정신이 구현되여있는 구호들이 재생되게 되였으며 백두산밀영을 비롯한 항일혁명유적들이 발굴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랜 세월 묻혀있던 백두산밀영을 중심으로 하는 백두산근거지가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였으며 후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데 이바지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