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박사 부교수 전경송
2025.9.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공화국의 초대 내각성원들중에는 리병남이라고 부르는 보건상이 있었다. 그는 해방전부터 소아과계통에서 의료활동을 꾸준히 벌려온 이름난 박사이며 성실하고 량심적인 애국자였다.》
존엄높은 우리 공화국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전 식민지인테리로서 갖은 멸시와 수모를 받아오던 평범한 소아과의사에게 국가의 책임적인 분야를 맡겨주시고 그가 인민의 충복으로서 보람찬 삶을 누려가도록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가 바로 우리 공화국의 초대보건상 리병남동지였다.
대대로 농사도 하며 고려치료도 해온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제의 탄압에 굴복하여 놈들의 《동조동근》설에 맞장구를 칠 때에 우리 민족특유의 체질적우월성에 대한 론문을 발표하여 의학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리병남동지는 민족의 우수성을 선전했다는 죄아닌 《죄》로 하여 일제의 박해를 받게 되였으며 우리 민족의 《렬등성》에 대한 론문을 발표할것을 강요당하였다. 여기에서 환멸을 느끼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던 그는 학계와 인연을 끊고 1942년에 《리병남소아과의원》을 차려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민지인테리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며 설음속에 살아오던 그의 민족적량심과 재능을 귀중히 여기시고 참된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8년 8월 2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을 앞두고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인민대표자대회에 참가한 리병남동지를 만나주시고 인민이 주인된 새 세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10여일이 지난 1948년 9월 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차회의에 참가한 리병남동지를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건강상태와 생활형편에 대해 일일이 알아보시면서 그에게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보건상으로 추천하려고 한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고 격정에 북받쳐 리병남동지가 나라의 보건사업을 꽤 감당해낼수 있겠는가에 대해 우려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부의 성원은 각기 해당 부문에 제기된 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책임자로서 항상 인민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더 잘 복무하겠는가를 생각하며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여야 한다고, 인민의 충복이 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건상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자면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헌법의 매 조항을 깊이 연구하고 그대로 집행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제부터 모든것을 다 배워야 한다고,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배울수 있다고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리병남동지는 공화국의 초대보건상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리병남동지가 국가의 참된 일군으로, 인민의 충복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리병남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보건상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고 공화국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사업하였으며 오늘도 애국렬사의 이름으로 인민의 기억속에 길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