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2026.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력사와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과 전통도 잘 알아야 한다.》

교서관이란 조선봉건왕조시기 경서를 비롯한 서적과 축문, 인장 등의 인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을 말한다.

그 연혁을 보면 1392년(태조 1년)에 설치했던 교서감을 1401년(태종 1년)에 교서관이라 하였으며 1466년(세조 2년)에 이르러 고려시기의 옛 이름을 따서 전교서(典校書)로 고쳤다가 1484년(성종 15년)에 다시 교서관으로 고쳤으며 1782년(정조 6년)에 규장각(奎章閣-왕실도서관)에 소속시켰다. 교서관이 규장각에 소속되면서 규장외각이라 불렀으며 규장각을 규장내각이라 불렀다.

교서관에는 판교(정3품), 교리(종5품), 겸교리(종5품), 별좌(종5품), 별제(정,종6품), 박사(정7품), 저작(정8품), 정자(정9품), 부정자(종9품) 등의 관원들을 두었으며 또한 잡직벼슬인 사준(종8품), 사감(종9품) 등을 두었다. 리속(吏屬)에 서리, 고직, 사령, 군사 등의 구실아치들이 있었다.

금속활자를 주조하던 주자소가 1460년에 교서관에 통합되였는데 여기에는 각자공(자형을 만드는 기술자), 주장(주조를 담당한 기술자) 등을 비롯한 장인(수공업자)들이 있었다.

교서관은 당시 봉건국가의 중요관청으로 취급되였다.

1484년(성종 15년)에 전교서를 고치여 교서관으로 만들 때 전교서의 박사 고언겸 등이 올린 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서적을 장악하는 직임은 예로부터 중하게 여기였습니다. … 고려의 태조때에는 내서성을 세웠고 성종때에 비서성으로 고치였고 우리 태조가 개국함에 이르러 관제를 고치여 바로 정하고 교서감이라 칭하였는데 12개 관청우에 있었습니다. 태종때에 교서관이라 개칭하고 교리 1명을 더 두었는데 예문관, 성균관과 더불어 3관이라고 칭하였습니다.》

보는바와 같이 교서관은 예문관, 성균관과 더불어 중시된 중앙관청임을 알수 있다.

그것은 교서관에서 찍어내는 서적들에 대체로 당시 봉건사회의 통치사상으로 간주되였던 유교적인 내용이 다분히 반영되여있어 유교를 전파하는데서 매개물로 리용되였기때문이다.

교서관에서는 주자소에서 련속적으로 주조한 갑인자, 임진자, 정유자, 임인자 등 각이한 크기, 각이한 형태의 금속활자들과 조지서에서 만들어낸 질좋은 종이를 리용하여 조선봉건왕조실록, 《동의보감》,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고전들을 찍어냈다.

교서관에서 간행된 각종 서적들은 왕실도서관이였던 규장각을 비롯한 국가서고에 보관되였다.

우리 인민의 남다른 슬기와 재능이 깃든 민족고전들은 오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영구히 보존되여있을뿐 아니라 조선봉건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등 수많은 민족고전들이 번역출판되여 조선력사연구와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