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승리의 한길만을 걸어온 조선혁명의 력사는 자력갱생의 력사라고도 할수 있다.
기양의 로동계급이 전후 재더미속에서 한장의 설계도면도 없이, 변변한 공작기계도 없이 만들어낸 《천리마》호뜨락또르도
《기양뜨락또르공장은 자력갱생의 공장입니다.》
전후 우리 나라에서 농촌경리발전에 절실히 필요한 뜨락또르를 자체의 힘으로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는 문제는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일에서 해방하고 협동화된 농촌에서 알곡생산을 훨씬 높이는데서 매우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였다.
당시 우리 나라 농촌에서 영농작업과 운반작업의 기계화를 하자고해도 적어도 3만대의 뜨락또르가 필요하였는데 이것은 외국에서 한해에 3 000대씩만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10년은 실히 걸리게 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당시 뜨락또르생산에서 제일 곤난한것은 참고할만한 한장의 설계도면도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기술자들은 뜨락또르를 분해하여놓고 부속품을 견본으로 도면을 그리였으며 로동자들은 그것을 보면서 제품을 가공해나갔는데 그 과정은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작업이여서 어떤 때는 한개의 부속품을 깎는데 몇번씩 실패하군 하였다.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사람들은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설계도면을 그리는데 반년이상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 도면을 언제 다 그리겠는가, 뜨락또르를 만들자면 근 2 000종의 부속품이 있어야 하는데 규격에 맞는 소재도, 그것을 깎을 설비도 없는 형편에서 어떻게 뜨락또르를 만들겠는가고 하면서 뜨락또르생산을 여러모로 방해하여나섰다.
그러나 기양의 로동계급은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들고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를 짓부셔버리면서 뒤바퀴의 차바퀴를 프레스로 압연한것이 아니라 강판을 주어모아 용접하고 찌그러진 부분을 산소불에 달구면서 두드려서 그 형태를 만들었으며 복잡한 기관본체와 변속함본체,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유압장치도 다 자체로 만들어내였다.
시운전과정에 뜨락또르가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갔다는 보고를 받으신
참으로 《천리마》호뜨락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