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노래한 혁명시인 조기천

 2023.3.27.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기천은 우리 당이 아끼고 사랑하는 혁명시인이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42권 267페지)

우리 공화국의 력사에는 오늘도 시대의 명작과 함께 영생하는 혁명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장편서사시《백두산》을 창작한 혁명시인 조기천선생이다.

조기천선생은 1913년 함경북도 회령군(당시)에서 출생하였다. 식민지망국노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탓에 그는 어려서 부모들을 따라 다른 나라로 가야 했고 청소년시절을 이국땅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그는 이역땅에서도 언제나 조국에 대하여 잊지 않았고 조선어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하였다.

고리끼명칭옴쓰크고리끼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중앙아시아에 있는 조선사범대학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조기천선생은 이역땅에서 살면서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조국해방의 날을 굳게 믿었고 해방후에는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와 마음껏 창작활동을 벌릴수 있게 되였다.

그는 불같은 창작적열정으로 조국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서정시 《두만강》을 비롯한 작품들을 련이어 창작하여 내놓았으며 주체35(1946)년에 꿈결에도 그리던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기천선생에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도 우리 말을 열심히 익히고 조선문학을 공부한데 대해 높이 치하해주시고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주시여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도 들려주시였다.

그처럼 바라던 소망대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조기천선생은 커다란 창작적흥분과 열정에 휩싸이게 되였다.

그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고매한 풍모를 장편서사시 《백두산》에 담기 위하여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천고의 밀림을 헤치면서 백두산에 올라 시상을 무르익히고 금옥같은 시어들을 한자한자 고르고 골라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엮어나갔다.

원고를 집필할 때에는 백지에 연필로 정히 썼고 시어 한자한자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던지 작품이 완성되였을 때에는 시의 전문을 한자도 틀림이 없이 다 외웠다.

그리하여 주체36(1947)년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장편서사시가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신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불태운 조기천선생은 항일의 전구들을 밟으며 창작한 장편서사시를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직접 랑송해드리였다.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의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이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탄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 이끼오른 바위를 벼루돌삼아

곰팽이 어렸던 이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듯 고루며

이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반만년의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희세의 위인,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전체 조선인민의 한없는 고마움, 다함없는 매혹과 흠모의 세찬 분출이였다.

조기천선생은 장편서사시 《백두산》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일단을 보천보전투를 중심으로 하여 보여주면서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비운에 잠겼던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시고 우리 인민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주신 분은 오직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긍지높이 선언하였다.

이뿐아니라 조기천선생은 해방후 불같은 창작적열정을 쏟아부으며 《흰 바위에 앉아서》, 《보뚝에서》, 《휘파람》과 같은 훌륭한 시작품들도 련이어 창작하여 내놓았다.

우리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그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불타는 락동강에까지 나아갔다.

이 과정에 조기천선생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강렬한 체험에 기초하여 《불타는 거리에서》, 《문경고개》, 《조선은 싸운다》, 《죽음을 원쑤에게》, 《나의 고지》를 비롯한 전투적인 시작품들을 창작하여 내놓았다.

그러던 그는 주체40(1951)년 7월에 서사시《비행기사냥군》을 창작하던중 원쑤들의 폭격으로 애석하게도 희생되였다.

조기천선생이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붓을 무기로 삼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였다고, 그를 잃은것은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큰 손실로 된다고 하시면서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잘하도록 하시였으며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는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61(1972)년 6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보천보전투승리 35돐 기념행사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에게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읽어보느라면 조기천이 마치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사람같이 느껴진다고, 체험도 해보지 못한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수령님을 중심에 놓고 대가 굵게, 심도가 깊게 잘 형상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가 시의 제목을 《백두산》이라고 단것만도 나라앞에 쌓은 대공이라고, 국보적가치가 있는 명작을 내놓을수 있은 비결은 그의 창작적재능만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에 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기천선생에게 혁명시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시고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혁명영화로 각색하도록 하시였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해주시였다.

오늘도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있는 혁명시인 조기천선생의 한생은 위대한 수령의 품속에서만이 시인의 삶도 빛나게 된다는 고귀한 진리를 안겨주고있다.

세상에 나온 때로부터 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끝없이 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하늘가에 더 높이 울려퍼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