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국주의부활의 새로운 단계-《신국가주의》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장경일 ,   2020.7.2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는 패망하였으나 그의 침략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성은 복수주의적야망으로 하여 보다 악랄해졌습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210페지)

오늘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책동과 해외팽창을 위한 침략책동은 날로 더욱 악랄하게 감행되고있으며 이것은 세계평화애호적인 인민들의 커다란 불안과 우려를 자아내고있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만도 일본은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고 통합막료회의를 총참모부와 같은 기능을 가진 통합막료감부로 만든것을 비롯하여 군국주의부활을 위한 국가기구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더욱 모지름을 쓰고있다.

현 일본수상 아베는 세계여론의 강력한 규탄에도 불구하고 70년동안 실현하지 못한 헌법개정을 무조건 실행할것이라고 떠벌이면서 일본을 위험천만한 전쟁국가로 만들기 위한 군국주의부활을 로골적으로 선동하고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려 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이 뜯어고치려고 하는 헌법의 내용에는 일본《천황》을 《국가원수》로 명기하고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만드는것을 비롯하여 위험한 내용들이 포함되여있다.

2019년에 진행된 일본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일본수상 아베는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하면서 《국민들을 위해 목숨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상 명확하게 규정하는것은 국방의 근간과 관련되는것》이라고 떠벌이였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책동은 어제오늘에 시작된것이 아니라 벌써 패망직후부터 복수주의적야망을 속에 품고 집요하게 감행되여왔다.

특히 《신국가주의》의 발생과 함께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책동은 은페된 단계에서부터 로골적인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1970~1980년대에 나온 《신국가주의》는 이른바 《국제국가》로서의 일본을 건설한다는 미명하에 일제시기와 같이 《천황》제에 기초하여 일본군국주의를 되살리고 국내체제의 파쑈화를 다그치며 해외침략을 또다시 감행하여야 한다는 침략적이며 반동적인 군국주의사상이다.

침략적인 조선전쟁과 윁남전쟁에 가담하여 돈벌이를 하면서 어벌이 커진 일본반동들은 1970년대에 해외침략야망을 더욱 로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국가주의》사상을 제창하였다.

원래 일본에서 반동적인 《신국가주의》사상이 처음으로 출현한것은 1960년대였다.

당시 군국주의호전분자인 미시마 유끼오는 일본의 시조신인 아마데라스오미까미로부터 히로히또에 이르기까지 《신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력대《천황》들을 중심으로 《일심일체》를 이루었기때문에 일본이 번영할수 있었으며 아시아의 《맹주》가 되였고 세계만방에 일본의 《국위》를 떨칠수 있었다고 하면서 일본이 다시 일어나서 세계에 군림하자면 《천황》제를 복구하고 정치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국가주의리념》이라고 떠벌이였다.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지난날 조선인민을 비롯한 아시아인민들에게 커다란 재난을 들씌우다가 력사의 오물장에 처박힌 일본제국주의를 되살리겠다는 침략리론이였다.

미시마 유끼오는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1969년에 도꾜대학 등에서 《천황》제를 옹호하는 토론을 벌리면서 광기를 부리다가 모든것이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자 1970년 11월 25일 할복자살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후 1970년대에 일본반동들은 일본이 자기 력사에서 《획기적인 시점》에 도달했다고 하면서 1970년대는 일본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의 시기》이며 국제국내적으로 《신질서》를 이룩하는 시기라느니 뭐니 하고 떠들어댔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기에 일본은 《대국》으로서 응당 국제적책임을 수행할 《정치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일본의 역할은 전세계를 평화와 번영에로 인도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렬강의 일원》으로서 일본사람들이 이른바《세계적역할》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란스럽게 선전하였다.

이러한 선전은 일본인들이 지난날 전패국으로서의 죄의식에서 벗어나 다시 세계무대에 진출하여 발언권과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것으로서 군국주의부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으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특히 당시의 일본수상 사또는 1970년대를 《명치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제1보를 내디딘 전환기》로 묘사하면서 《일본의 역할은 아시아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안정에 최대한으로 기여하는것》이라고 떠벌였다. 더우기 이자는 지난날 일제가 꿈꾸던 《대동아공영권》실현이 침략적인것이 아니라 《인류애의 표현》이라고 찬양하면서 힘을 배가하여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돌이켜야 한다느니, 《패전의 치욕》을 씻어버릴 때가 되였다느니, 《일본의 진짜면모를 회복》해야 한다느니 하는 망발들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망발은 당시 일본반동지배층들이 되살아난 군사경제력을 턱에 걸고 《천황》제에 기초하였던 일본제국주의시대와 같이 군국주의적인 정치체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신국가주의》에 깊이 물젖어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 군국주의호전분자인 나까소네가 일본수상자리에 올라앉으면서 일본반동들은 《신국가주의》를 국가정책으로 정식 발표하였다.

나까소네는 수상취임직후에 한 여러 연설들에서 이른바 《전후 정치총결산》을 떠들면서 앞으로 세계정치에서 일본의 발언권을 보다 강화하며 《국제국가》로서의 일본의 역할을 발휘할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결국 조선과 아시아인민들의 고혈로 이루어진 군사경제력에 의거하여 해외팽창과 재침을 공공연히 단행하겠다는 속심을 드러낸것이였다.

이에 따라 나까소네는 1986년 3월 내각회의에서 《국제국가로서의 일본국가》를 건설하고 《세계에 기여하는 국력》을 배양하며 《자주방위에 필요한 무력을 보유한다.》는 3대정치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정식 《신국가주의》로 명명하였다.

그러면서 나까소네는 일본을 《국제국가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로 만들어야 국제문제들을 일본의 리익과 요구에 맞게 처리할수 있다고 하면서 국가통치자의 결심에 따라 《국체의 일치성》을 이룩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일관성있는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정치개혁》, 《행정개혁》, 《사회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떠벌였다.

이처럼 일본반동들이 내세운 《신국가주의》는 국력에 대응한 정치군사대국을 건설한다는 구호밑에 《천황제》를 되살리고 일본사회의 군국화에 박차를 가할것을 목표로 한 반동적인 사조였다.

랭전종식이후 《신국가주의》는 일본의 정치체제를 뿌리채 개혁하여 경제력에 대응한 《대국》의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보다 광신적인 군국주의정치사조로 되였다.

이처럼 1970-1980년대에 《천황절대주의》의 변종인 《신국가주의》가 군국주의부활의 리념적기초로, 국가정치사조로 등장함으로써 일본반동들의 군국주의부활책동은 보다 로골적인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오늘도 일본반동들은 죄악에 찬 저들의 침략력사를 성근하게 사죄하고 반성할대신 모험적인 군국화의 길로 질주하면서 일본헌법을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군사대국화책동에 필사적으로 발악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군국주의부활책동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며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 일제에 의하여 쓰라린 고통을 강요당한 조선인민과 아시아인민들, 세계 평화애호적인민들은 결코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을것이며 군국주의부활과 해외침략에 들뜬 일본반동들에게 준엄한 징벌을 내리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