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한철학
2025.4.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 바다와 같이 넓으신 도량과 그 끝을 헤아릴수 없는 포옹력을 지니시고 만민을 품어주시고 보살펴주신 대성인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품에 안아 믿음을 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영원한 동행자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광폭정치가 낳은 하많은 이야기들중에는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 지주 김정부가 애국지주로 성장하여 조국해방을 위한 성업에서 아름다운 생을 빛내인 이야기도 있다.
1937년 2월초 어느날 조선인민혁명군의 밀영에는 전에 없는 푸짐한 상이 차려졌는데 그 상의 주인은 혁명군의 어느한 대원이나 지휘관이 아니라 다름아닌 지주 김정부였다.
1936년 8월말 지양개부락에 모연공작을 나갔던 소부대성원들은 깊은 밤중에 친일지주들이라고 하면서 칠순이 넘어보이는 로인과 그밖의 몇몇 사람들을 데려왔었다. 소부대책임자는 저 령감은 땅만 해도 자그만치 150정보나 가지고있고 자동차까지 한대 사가지고 큰 장사판을 벌려놓았다고 하면서 그를 악질 친일지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전부터 지양개의 대부호 김정부와 그의 과거에 대하여 알고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타도대상이 아니고 포섭대상이며 친일지주가 아니고 애국지주라는것을 이 자리에서 보증한다고 하시였다.
김정부는 독립군이 장백땅에서 한창 기세를 올릴 때 군비단의 남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산을 털어 독립군에 천과 식량을 비롯한 여러가지 후방물자를 대주었으며 그의 집은 독립운동자들의 숙박소인 동시에 회합장소로 리용되였다.
그는 지양개골안에 구학서당을 세우고 자주독립과 애국애족의 사상을 심어주는 민족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그가 소작료도 소작농들이 자원적으로 바치도록 하였으며 장리쌀도 리자를 붙이지 않고 받았기에 지양개사람들은 그를 한결같이 찬양하였으며 그의 집앞에 송덕비까지 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양개의 지주들을 사상적으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게 하며 그들을 통하여 장백일대의 유지들을 혁명의 관조자, 방해자로부터 혁명의 동정자, 지지자, 협조자로 만들기 위해 그후 수차례에 걸쳐 김정부를 만나주시고 이렇게 생일상까지 차려주시였던것이다.
본인도 잊었던 생일을 축하해주시는 그이의 다심한 사랑에 김정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 공산주의자들을 곱지 않게 보았는데 김장군이 하는 공산주의는 지주도 친일, 배일로 갈라서 친일만 치니 누가 김장군의 공산주의를 나쁘다고 하겠는가고 하면서 이제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죽어도 혁명군의 뒤시중을 하다가 죽겠노라고 자기의 결심을 표명하였다.
김정부는 그후 혁명군의 후방사업을 도와 3 000여원에 달하는 많은 자금을 내놓았으며 천과 식량을 비롯한 많은 물자들을 해결해주었을뿐 아니라 지양개일대의 유지들을 교양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원호사업을 통이 크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처럼 대해같은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의하여 김정부와 같은 많은 유산자, 대지주들이 조국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애국적량심을 다 바치게 되였으며 그것은 일제를 반대하는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데서 무시하지 못할 공헌으로, 항일혁명위업에 대한 힘있는 지지로 되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위대한 인간적풍모를 지니시고 만사람을 품에 안아 보살펴주신 위대한 인간, 절세의 위인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