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만경대에서 터친 김규식의 감탄

 2023.4.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촌늙은이들이였지만 진정을 말하건대 나는 그분들의 견결한 혁명정신에 탄복하였고 거기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다.》 (김일성전집》 제95권 13페지)

위대한 수령님의 가정은 대대로 조선의 어느 농촌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소박하고 평범한 가정, 남들보다 별로 표가 나는것도 없고 특이한 점도 찾아볼수 없는 가난한 가정이였지만 조국과 겨레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나 아낌없이 몸을 내대는 애국적인 가정이였다.

집안의 가장이신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악랄한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자손들을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혁명투쟁에 아낌없이 내세워주시였을뿐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고 개선하신 이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위업을 묵묵히 받드시였다.

해방후 수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을 보내신 만경대고향집을 찾아 김보현할아버님을 만나뵙고 경모와 감탄을 금치 못하였는데 김규식선생도 그중의 한사람이였다.

김규식선생으로 말하면 일찌기 대학을 졸업하고 경성청년회 총무, 경신학교 교감, 연희전문학교 교수 등을 하다가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상해림시정부》 외무부장, 《중경림시정부》 부주석, 《조선민족혁명당》 명예주석을 지낸 명망있는 애국지사였다.

주체37(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한 김규식선생은 김구 등 정당, 사회단체지도자들과 함께 특별히 세차례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러던 4월 27일 만경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김구선생으로부터 도무지 믿기 어려운 방문소감을 들은 김규식선생은 이튿날 만경대로 향하였다.

11시경 만경대에 이른 김규식선생은 만경봉기슭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초가집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생가임을 알게 되였을 때 이미 김구로부터 들은바 있지만 너무도 놀랍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정말 여기가 장군님의 고향집이 옳긴 옳은가고 되묻기까지 하였다.

숭엄한 감정에 싸여 고향집뜨락에 들어선 선생이 집안팎을 둘러보니 마당한 구석과 헛간에는 우리 인민의 수난의 력사를 말해주듯 손때묻은 농쟁기들과 쭈그러진 김치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집안살림이라야 장판도 아닌 노전우에 키낮은 책상과 라지오 한대 그리고 부엌의 소박한 물동이와 그릇가지들뿐 이였다. 더우기 맨 웃방에는 흙무지를 무드기 쌓아놓고 고구마싹을 기르고있었는데 방금 물을 주었는지 파란 잎사귀들이 물을 머금고있었다.

믿기 어려운 현실앞에서 놀라움과 감격이 뒤엉켜 아무 말도 없이 덤덤히 서있던 선생은 혼자말로 《장군님댁에서 고구마싹을 틔우다니.》라고 하면서 감동어린 시선으로 수원들을 돌아보는것이였다.

뒤늦게야 김보현할아버님께서 뒤울안에 계신다는것을 알게 된 선생이 먼저 찾아뵈옵지 못한 자책감에 싸여 평시에 볼수 없던 빠른 걸음으로 집뒤로 돌아가니 무명바지저고리에 검정조끼를 단정히 받쳐 입으신 할아버님께서 수수대껍질을 벗기고계시였다.

김보현할아버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린 김규식선생은 어제 백범이 왔을 때도 할아버님께서 울바자를 엮고계시더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험한 일을 하시는가고, 손자분이신 장군님을 일국의 수령으로 두신 분이 이젠 그만 쉬셔야 되지 않겠는가고 진정어린 말씀을 드리였다.

할아버님께서는 자애에 넘친 안광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사람마다 자기의 직분이 있지 않소. 장군은 나라의 정사를 보고 나는 농군이라 농사를 지어야지요. 그래야 장군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수 있을것이고 나라의 통일독립을 하루속히 성취할수 있지 않겠소.》

이루 말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목이 꽉 메여 뒤말을 잇지 못하고 눈굽을 적시던 선생은 할아버님의 흙배인 손을 어루만지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수원들과 함께 만경대고향집을 나와 만경봉으로 오르면서 선생은 《과시 장군님을 두신 가문의 거룩하신 할아버님이시구나.》라고 혼자말로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그날 숙소에 돌아온 선생은 만경대에서 받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며 밤늦게까지 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김일성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에 가보았소. 어제 백범의 말을 듣고 설마 그러랴 하는 생각에서 직접 가보았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요. …백범의 말이 옳았소. …과시 장군님의 가문은 애국명문의 가문이며 우리 백성의 가문이요. 그러니 장군님께서 어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으시겠소.》

이것은 비단 김규식선생 혼자만의 감탄이 아니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수를 헤아릴수 없이 해마다 만경대고향집을 찾는 우리 인민들은 물론 사상과 정견, 신앙이 다른 해외동포들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한결같은 감탄의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