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사람의 기원문제는 철저히 우리 나라에서 발굴한 고고학적자료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해명되여야 합니다.》 (
황해북도 황주군 청파대동굴유적은 조선사람의 기원과 혈연적공통성을 확증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구석기시대후기유적이다.
이 유적은 평양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황해북도 황주군 읍 청파대마을 뒤산(N 38°40′54″, E 125°47′30″)에 위치하고있다.
청파대동굴은 지체구조적으로 평남륙향사의 황주향사 동쪽변두리에 발달되여있다. 동굴퇴적층은 동굴바닥의 경사에 관계없이 거의 수평으로 놓이였으며 층의 두께는 지점에 따라 얼마간 차이나지만 대체로 고르롭게 이어졌다.
동굴주변에는 중화주층의 회록색분사질점판암, 견운모질분사암 및 회색규암이 널려있는데 이와 같은 풍화산물들이 퇴적층의 구성물질을 이룬다.
동굴퇴적층은 그것을 이루고있는 퇴적물의 조성과 알굵기, 색갈 등에 의하여 서로 다른 15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퇴적층의 13층에서 황주사람 7호로 명명한 인류화석이 나왔다.
황주사람 7호는 왼쪽아래턱뼈의 일부로서 그 겉면은 거칠고 뼈주름이 비교적 잘 발달되여있다. 그리고 왼쪽첫째큰어금이와 둘째큰어금이가 남아있고 셋째큰어금이는 나오지 않았다.
턱가지의 높이는 61.1mm, 너비는 34.6mm이고 그 지수가 56.2로서 중간크기형(52.2~58.1)에 해당된다.
아래턱뼈몸의 크기와 형태를 특징짓는 아래턱뼈몸두께지수는 40.8로서 중간크기형(37.1~41.8)에 속한다.
턱구멍의 직경은 6mm정도이며 그 지수가 50.7로서 턱구멍은 아래턱뼈높이의 중간에 위치한다.
아래턱각은 134°로서 매우 큰형(131~142°)에 속한다.
큰어금이들은 이발그루지수가 각각 106.1, 96.1로서 이발그루의 형태가 4각형에 가깝다.
첫째큰어금이는 이발그루의 앞변두리가 모가 무딘 직각형이며 뒤변두리는 둔한 원형을 이룬다. 이발은 심히 마모되여 이발그루씹는면의 구조가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큰어금이는 이발그루씹는면에 4개의 도드리가 나타나며 전형적인 +4형에 해당된다. 또한 4개의 도드리가운데서 볼측앞도드리가 가장 크고 그다음 볼측 뒤도드리가 크다.
황주사람 7호는 아래턱뼈의 크기와 겉면주름발달상태, 이발그루씹는면의 마모상태를 보면 대략 40살정도의 남자로 인정된다.
황주사람 7호는 비교형태학적으로 볼 때 기본상 일부 신인의 원시적인 특징과 현대사람에 가까운 진보적인 특징들을 함께 가지고있다.
원시적인 특징은 우선 아래턱뼈몸두께지수가 40.8로서 현대사람에 비해 작은것이다. 황주사람 7호는 이 지수가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신인단계의 룡곡사람 4호(41.4), 대흥사람 4호(41.3)와 비슷하다.
다음으로 원시적인 특징은 턱가지너비가 큰것이다.
인류진화발전과정에 턱가지의 작은너비는 점차 작아졌다. 황주사람 7호의 턱가지작은너비는 33.7mm로서 현대사람(30.0mm)보다 크다.
다음으로 원시적인 특징은 이발그루길이가 큰것이다. 인류진화발전과정에 이발은 이발그루길이에 비해 이발그루너비가 커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였다. 황주사람 7호의 아래둘째큰어금이의 이발그루길이는 10.2mm로서 이머리너비(9.8mm)에 비해 크다. 따라서 이발의 크기와 형태를 반영하는 이발그루지수는 96.1로서 우리 나라에서 알려진 신인단계의 룡곡사람 2호(98.3), 룡곡사람 4호(98.2)와 비슷하다. 룡곡사람 2호는 이른단계의 신인으로 인정되고있다.
또한 둘째큰어금이씹는면에서 볼측뒤도드리가 볼측앞도드리에 비해 큰것은 현대사람과 구별되는 원시적인 특징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황주사람 7호는 신인단계의 원시적인 특징들이 일부 나타나며 턱구멍부위의 아래턱뼈두께와 턱구멍위치지수가 현대사람과 비슷한 진보적인 특징들이 있으므로 늦은 신인단계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황주사람 7호는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인류진화발전과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귀중한 실물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