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리의 전쟁로병동지들은 준엄한 전화의 나날로부터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전기간 변함없이 당과
그러시면서 영광스러운 우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예롭게 사수하고 대를 두고 이어갈 불멸의 영웅정신을 마련해주신 1950년대의 조국방위자, 조국건설자들이야말로 후세토록 길이 찬양하고 본받아야 할 고마운 은인들이며 참다운 스승들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고생은 자신들이 도맡아 겪으면서 후대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친 훌륭한 혁명가, 애국자들, 전쟁의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그러했고 전후에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온 우리의 전쟁로병들가운데는 원산사범대학 교육과학연구소(현재)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엄동섭선생도 있다.
량손의 손가락들가운데서 유일하게 엄지손가락 하나만이 남은 영예군인, 그런 불편한 몸으로
…
병원의 침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기의 손을 바라보는 로병의 눈가에서는 원통하고 분통한 비분의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원쑤의 폭탄과 총탄이 우박치는 전호가에서 그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모습은 날아드는 폭탄에 자기를 덮으며 《동섭이 피하라!》고 울리던 분대장의 목소리뿐이였다.
자기를 구원하고 희생된 분대장의 령전에서 이제 더는 원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수 없게 된 자기의 두손을 바라보는 로병의 눈에서는 정녕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있었다.
《분대장동지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저 원쑤놈들을 기어이 복수하고 분대장동지가 흘린 피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자고 하였는데…》
이렇게 로병은 희생된 전우와 영결하고 제대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고향에 돌아온 장한 아들,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운 자식을 한품에 안아보는 부모님들은 《동섭아 이제부터는 우리가 너의 손이 되여주마.》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그러한 그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대학으로 떠나는 로병의 마음속에서는 먼저 간 전우들의 몫까지 합쳐 높은 과학기술로써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려는 불같은 결의가 굳혀지게 되였다.
허나 영예군인인 그에게 있어서 학습은 그가 바라는것처럼 순탄치 않았다. 이러한 그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준것은 한 영예군인대학생의 자작시였다. 백송리에 찾아오시여 부상당한 제대군인의 모습을 보시고 갈리신 음성으로 부상자리가 아프지 않는가고 하시며 이제부터는 학습전투에서 잘 싸우라고, 학습도 전투라고 하신
(그렇다 학습도 전투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희생된 전우의 원한을 갚을수 없다.)
이렇게 되여 새로운 각오를 안고 분발해나선 그에게 대학의 선생님들과 동지들은 사심없는 방조를 해주었다. 밤을 새워 개별강의를 해주시던 선생님들과 불편한 몸을 위해주던 동지들의 모습에서 그는 뜨거운 정을 받아안았으며 높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서게 되였다.
이렇게
당시 제대군인학급을 담임한 엄동섭선생은 학급을 제일먼저 2중천리마학급의 영예를 지니도록 이끌었으며 언제나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학생들에게 참된 인간의 모습을 심장마다에 심어주었다.
제대군인대학생들을 엄지손가락하나만 가지고 배워주어야 하는 엄동섭선생의 노력은 정말로 힘에 부친 전투였다. 그러나 그는 굴할줄 모르던 전화의 그 모습으로 후대교육사업에 자신의 모든 심혈을 아낌없이 쏟고 또 쏟았다.
그러던 그가 교단에서 내려올 생각까지 하였던적이 있었다.
신입생들앞에서 강의를 하던 엄동섭선생은 칠판에 글을 쓰기 위해 백묵을 쥐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엄지손가락이 굳어져 백묵은 칠판에서 《떡,떡》 소리만 내다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되였다.
무엇인가 불만족스러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엄동섭선생의 생각은 깊어갔다.
(학생들앞에 서있는 선생은 모습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나의 이 모습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끼겠는가?)
그후 선생은 엄지손가락에 백묵을 끼우고 밤을 새워가며 글쓰는 련습을 하였고 강의시간마다 훌륭한 강의로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심어주었다.
엄동섭선생은 자기의 두 딸을 영예군인들에게 시집보내고 맏손녀까지도 영예군인에게 시집을 보내였다. 이 사실은 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정에서나 교단에서 한모습으로 가르쳐왔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선생의 걸음은 자욱마다 강의였다. 한생을 변함없는 한모습으로 살아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전쟁로병이 다르다고 하면서 전세대 혁명선렬들의 사상정신을 따라배우고있다.
엄동섭선생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손을 감추었다. 그는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야 한다고, 하물며 즐겁게 보는 사진인데 이런 손을 보면 누가 좋아하겠는가고 하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신의 손이 사진에 나오지 않게 하려고 감추군하였다.
바로 그 손을
제5차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한 엄동섭선생은
그러나 그렇게 보이기 저어하던 손을
참으로 전쟁로병들과 영예군인들을 한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며 내세워주시는
엄동섭선생은 오늘도 로당익장하며 교육사업에 자신의 애국의 마음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