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유산들과 력사교양거점들을 통한 교양사업을 실속있게 하여 인민들과 청소년들이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 미풍량속을 잘 알고 민족적긍지와 애국심을 깊이 간직하며 민족성을 고수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력사유적의 하나인 봉수는 나라의 관문을 지키는데서 성과 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봉수는 보다 발전된 통신련락수단이 없었던 당시 외적의 침입을 비롯하여 국가적인 사변을 제때에 봉건정부가 장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하여 설치한 군사경보통신수단으로서 밤에는 홰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하였는데 봉수신호를 하는 곳을 봉화대, 봉수대 또는 연대라고 하였다.
봉수제도는 삼국시기에도 있었고 발해나 고려시기에도 있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서면서 선조들은 더욱 발달된 봉수망을 형성하고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국경과 해안지대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제때에 알고 그에 대처하군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봉수제도와 관련한 자료들은 《경국대전》이나 《대전회통》을 비롯한 여러 민족고전들에 수록되여있다.
민족고전 《만기요람》(군정편)에도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주요 통신수단이였던 봉수의 운영방식과 보고질서, 봉수길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다.
실례로 《매일 날이 어두워지면 목멱산(木覔山)봉수군 1명이 단봉문밖에 와서 목면산의 봉화 다섯대를 기준으로 다 들거나 한대씩 들지 않는 의미로 남소(南所: 다섯 위장소의 하나로서 위장이 수직하는 장소-역주)에 보고한다. 한대가 모자라것은 함경도에서 지핀 봉화이거나 구름이 덮여 어두워졌기때문에 모자란다는 말이다. 해당 소의 부장은 즉시 병조에 낱낱이 보고하며 병조는 다음날 아침 임금에게 보고한다.》와 같이 목멱산봉수군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보고하며 봉수의 개수를 보고 어떻게 정황을 식별하고 보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자료를 비롯하여 국경연선과 지형에 따라 배치된 봉수는 지역별로 몇개이며 그 경로는 어떻게 형성하고있었는가 등 봉수와 관련된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밝혀져있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다른 민족고전들에 수록된 봉수관련자료보다 좀더 구체적이면서도 일목료연하다.
이외에도 민족고전《만기요람》(군정편)의 봉수조항목에는 봉화대의 편제, 가호수, 처벌 등 봉수운영과 관련한 자료들이 수록되여있다.
대체로 봉수는 구름과 안개와 같은 자연현상의 영향을 받는것과 같은 제한성이 있으나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중세시기에는 오직 봉수를 통하여서만 적정의 유무를 봉건정부와 린접 고을들에 전달할수 있은것으로 하여 널리 리용되였다.
봉수제도는 조선인민의 슬기와 열렬한 애국주의정신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