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건축술로 이름난 금강산의 보덕암

 2022.1.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1만 2천봉우리마다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장엄하게 솟아있는 천하절승 금강산에는 옛 건물과 탑, 비석 등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인민들의 창조적재능과 예술적기교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들이 수많이 보존되여있다.

그가운데는 천길벼랑의 중턱에 외다리를 걸고 날아갈듯이 매달아지은 기묘한 건축술로 하여 이름난 보덕암도 있다.

보덕암의 전경
보덕암의 전경

보덕암은 금강산의 계곡미를 대표하는 내금강 만폭동에 있다.

만폭동에 금강산계류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팔담이 있는데 백룡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팔담은 우로 1㎞도 못되는 구간에 8개의 못과 폭포가 층층이 련결되여있다. 그중 다섯번째 못인 분설담에 이르러 만폭동절경이 절정에 이른다. 보덕암은 바로 이 분설담주변에서 벼랑으로 올려 지른 법기봉중턱 약 150m높이에 매달려있다.

보덕암의 명칭은 이 가파로운 절벽에 있는 보덕굴이라는 자연굴의 이름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깊이 5.3m, 너비 1.6~2m, 높이 1~2m인 보덕굴에는 마음씨 착한 보덕이라는 처녀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는 전설이 깃들어있다.

고구려시기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보덕암은 원래 본채와 판도방(불도를 닦느라고 중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방)의 두채의 건물로 이루어져있었으나 지금은 1675년에 고쳐짓고 1808년에 보수한것으로 알려져있는 본채만 남아있다.

20m가 넘은 아슬아슬한 절벽중턱에 지은 본채는 길이 3.35m, 너비 0.85m인 단칸집인데 벼랑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내민 건물을 19마디의 동판을 감아 만든 7.3m의 구리기둥 한대로 떠받들게 한 기발한 기교로 하여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수 없게 한다.

아슬아슬한 벼랑중턱에 매여달린듯한 보덕암을 보고 고려의 시인 리제현(1287년-1367년)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였다.


서늘한 바람은 바위돌사이로 불어나오고

골짜기의 물은 깊고도 짙게 푸르구나

지팽이에 기대여 낭떠러지우를 쳐다보니

나는듯한 집 한채가 외나무기둥에 실려있네


건물의 바닥에는 널마루를 깔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우에는 꽃가지형제공을 가진 단익공두공을 얹고 아름다운 모루단청을 입혔는데 소라반자로 한 천정에는 련꽃무늬를 그렸다.

마루바닥을 걸어가도 흔들흔들하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것은 마치도 엷은 살얼음장우를 걸어가는 느낌을 주는데 건물자체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거린다.

보덕암의 본채는 단층집이지만 겹처마합각지붕과 박공이 앞으로 보이게 한 배집지붕, 우진각지붕이 층층히 놓여있어 마치 3층집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한대의 기둥우에 세운 단칸집에 세층으로 합각지붕, 배집지붕, 우진각지붕 등 서로 다른 지붕을 잘 어울리게 올린것은 보덕암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독특한 건축형식이다.

이처럼 자그마한 건물에서 우리 나라 민족건축의 여러가지 특징들을 집약적으로 살린것, 암자를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조화를 잘 이루도록한것, 암자의 위치와 규모를 잘 선택한것 등은 선조들의 뛰여난 재능을 잘 보여준다.

당시의 건축술을 자랑하며 옛모습 그대로 서있는 보덕암은 오늘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을 찾는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널리 리용되고있으며 우리 당의 민족문화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국보로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