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쏘도전쟁문학발전에 이바지한 쏘련의 전선군인출신작가들

 2021.10.2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쏘련붉은군대의 장병들은 쓰딸린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당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웨치며 적들과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0권 451페지)

쏘도전쟁문학은 쏘도전쟁시기 파쑈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쏘련군대와 인민의 영웅적투쟁을 진실하게 재현한것으로 하여 20세기 후반기 현대쏘련문학의 발전과 사람들의 애국주의교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쏘도전쟁문학은 쏘도전쟁시기와 그 이후 근 반세기동안 쏘도전쟁사변을 반영하여 창작된 문학을 말한다. 이 문학은 쏘도전쟁시기의 사건과 사실, 인간들의 생활과 투쟁을 예술적으로 진실하게 재현하고있다.

20세기후반기 현대쏘련문학의 주요한 문학현상인 쏘도전쟁문학에 대하여 말할 때 전선군인출신작가들에 대하여 많이 말하게 된다. 그것은 쏘도전쟁을 반영한 문학의 발전이 그들의 창작과 밀접히 련관되여있기때문이다. 특히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은 쏘도전쟁을 반영한 소설문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이라고 하면 쏘련에서 1950년대후반기-1960년대초에 문단에 등장하여 쏘도전쟁을 반영한 문학창작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룩한 작가들을 말한다. 다시말하여 쏘도전쟁이 일어났던 1941-1945년에는 직접 손에 총을 들고 전선에서 싸웠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10년동안 문학수업을 거쳐 직업적인 작가로 문단에 나선 작가들을 말한다.

쏘도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의 나이는 17~18살로서 중학교졸업반이거나 중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교정의 책상머리에서부터 곧바로 준엄하고 가혹한 전쟁마당에 뛰여들었다. 아직 순진하고 천진한 랑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그들은 전쟁초기에 자기들의 어깨우에 실린 전쟁의 중하가 얼마나 무거운것인가를 다는 깨닫지 못했다. 더우기 전쟁이 끝난 후 작가로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전선에서 죽음과 시련의 고비들을 넘나들며 준엄한 전쟁의 나날들을 헤쳐오는 과정에 그들은 급속히 성장하였고 풍부한 전선생활경험을 가지게 되였다.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은 풍부한 전선생활경험을 가졌지만 작가로서 문단에 나서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쏘도전쟁이 끝난후 그들의 머리속에는 전쟁의 추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고 새세대들에게 금방 겪은 전쟁의 경험과 교훈을 글로 남기고싶은 욕망은 컸지만 아직 창작적경험이 부족하였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후 제대되여 문학수업을 받기도 하고 자체의 노력으로 원고를 써보기도 하면서 창작적기량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들은 전쟁시기 자기가 목격하고 체험했던 실재한 사실들을 예술적으로 재현하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창작의 첫 시기에는 실패작을 내놓기도 하였다. 문학계에서 일부 평론가들은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이 투고한 원고에 대하여 《전쟁현실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하였다》고 호되게 꾸짖기도 하고 《아직 문학리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작가들, 또는 문학에 대하여 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작가적재능을 가지지 못한 작가들》이라고 비평하기도 하였다.

전선군인출신작가들에게는 로세대작가들처럼 풍부한 문학적경험은 없었지만 전호속에서 전쟁현실을 직접 체험해본 풍부한 생활경험이 있었으며 그것은 창작의 커다란 밑천으로 되였다.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은 꾸준한 창작수업을 통하여 1950-1960년대초에 문학계의 인정을 받는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쏘련문학계에서는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을 《전선세대》작가들이라고도 부르며 그들의 창작에 대하여 《전쟁산문의 두번째파도》, 《전호속에 진실문학》, 《중위들의 소설문학》 등으로 각이하게 부르고있다.

쏘도전쟁문학발전에 이바지한 이름있는 전선군인출신작가들로 서는 유리 본다레브, 와씰 븨꼬브, 미하일 알렉쎄예브, 윅또르 아스따피예브, 예브게니 노쏘브, 그리고리 바클라노브 등을 들수 있다. 전쟁시기 이들은 포병, 보병, 통신병, 땅크병 등 각이한 병종에 속하는 평범한 군인들이였다. 전선생활을 직접 체험한 그들은 전쟁이 끝난후 문단에 나서서 창작수업을 거쳐 이름있는 작가들로 성장하였으며 우수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전선군인출신작가들가운데서 대표적인 작가는 현대쏘련문학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유리 본다레브라고 말할수 있다. 그는 로씨야의 우랄지방출신이였다. 쏘도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17살밖에 되지 않았다. 18살이 되던 1942년 8월에 그는 전선으로 나갔고 포병으로서 전쟁의 전기간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1944년에는 화선입당하였다.전선에서 그는 두번이나 부상을 입었고 1945년에는 온 나라 인민들과 함께 쏘도전쟁의 승리를 경축하였다.

전후에 그는 고리끼명칭문학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적인 작가로 되였으며 쏘도전쟁문학창작에서 뛰여난 창작적기교를 발휘함으로써 문단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그가 창작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쏘도전쟁시기의 사건들을 반영하고있다.1953년에 작가는 쏘도전쟁현실을 반영한 첫 단편소설집 《큰 강에서》를 내놓았으며 련이어 전쟁시기 포병군관학교 학생들의 생활을 형상한 중편소설 《지휘관들의 청춘》(1956), 가렬한 전쟁의 나날 포중대전투원들의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을 반영한 중편소설 《최후의 일제사격》(1959)과 《대대는 지원사격을 요구한다》 (1957)를 창작발표하였다. 전쟁물창작에서의 작가의 기교는 특히 장편소설 《뜨거운 백설》 (1959)과 전쟁물영화문학 《해방》(1970)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꼰스딴찐 워로비요브도 전선군인출신작가들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1919년에 로씨야의 산간오지인 꾸르쉬나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을 보냈다.1934년에 부모들을 따라 모스크바에 온 그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로동자청년야간학교를 다녔다. 그후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1937년에 붉은군대에 입대하였으며 1년후에는 크레믈리군사학교 학생이 되였다. 1941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전선으로 나가 적들에게 포로되여 포로수용소생활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1943년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한 그는 전쟁마지막시기까지 빨찌산부대지휘관으로 싸웠다.

쏘도전쟁이 끝난후 1947년부터 그는 문학창작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작품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중편소설들인 《모스크바부근에서 희생된 사람》, 《나의 동창생에 대한 이야기》, 《웨침소리》 등 쏘도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썼다.

윅또르 아쓰따피예브도 쏘도전쟁문학에서 자기의 창작적개성을 보여준 전선군인출신작가이다.

그는 1924년 씨비리의 크라쓰노야르스크에서 출생하였다. 7살 때에 일찌기 어머니를 잃은 그는 어릴 때부터 어려운 생활체험을 하면서 성장한다. 그는 공장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차조립공으로 일하다가 1942년에 전선으로 나갔다. 그는 전선에서 포병으로 싸우다가 심한 부상을 입고 1945년에 제대된다. 쏘도전쟁이 끝난후 그는 열직장 로동자, 신문사 조수 등 각이한 직업에서 일하다가 1953년부터 문단에 나서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아쓰따피예브는 농촌주제작품과 쏘도전쟁주제작품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벌렸다. 그가 창작한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중편소설 《어디선가 전쟁의 포성이 울린다》, 《별무리》, 《목동처녀와 총각》과 같은 작품들을 실례들수 있다.

이처럼 유리 본다레브, 꼰스딴찐 워로비요브,윅또르 아쓰따피예브를 비롯한 쏘련의 많은 전선군인출신작가들은 자기들이 직접 체험한 전선생활경험에 기초하여 쏘도전쟁을 진실하게 재현한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쏘도전쟁문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