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가르쳐주신 번호별 전차운행방법

 2020.4.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80평생은 한마디로 말하여 인민의 아들로서 인민을 위하여 바친 투쟁의 한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김일성전집》 제92권 215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이 행복의 요람속에 든 야밤삼경에도 잠 못이루시고 줄곧 인민을 위한 일을 하시였다.

주체61(1972)년 7월 어느날 자정도 지난 깊은 밤이였다.

평양시당의 한 책임일군은 다급히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송수화기를 들었다.

순간 수화구에서는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울려나왔다.

그무렵 북방의 어느 한 지방을 현지지도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먼거리전화를 걸어오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즘 무궤도전차가 어떻게 운영되고있는가를 알아보시더니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라고 이르시였다.

시당의 책임일군은 영문도 모르고 급히 종이와 연필을 마련해가지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기다리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이우에 먼저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안에 1자를 써넣으라고 하시였다. 다음 거기서 좀 떨어져서 또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안에 2자를 쓰라고 이르시였다. 그런 다음 거기서 또 좀 떨어져서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리고 그안에 3자를 쓰라고 하시였다. 이제는 세 동그라미를 한선우에 놓이도록 련결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흰종이우에는 수자 1, 2, 3이 들어간 동그라미 세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의 선으로 련결된 그림이 나타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림을 다 그렸는가를 확인하시더니 뜻밖에도 자신께서 생각해내신 새로운 무궤도전차운행방법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더 자세히 가르쳐주겠으니 전문일군을 데리고오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시당책임일군은 전문일군을 데리고 곧 길을 떠났다.

달리는 차안에서 시안의 어느 한 전차정류소를 지나느라니 그의 눈앞에는 그해 정월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이 선히 떠올랐다.

대한추위로 날씨가 몹시 사나운 어느날 아침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시안의 여러곳을 돌아보게 되였다.

그런데 줄곧 차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그 전차 정류소근처에서 차를 멈추게 하시는것이였다.

그 일군은 급히 바깥을 살펴보았다. 전차정류소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정류소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였다.

사람들은 외투깃을 높이 올리고 서성거리면서 전차가 나타나기를 안타까이 기다리고있었다. 1분, 2분, 3분, 4분,…시간은 사정없이 흐르는데 전차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차도 그대로 그자리에 멎어있었다.

이날 아침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도시민들의 출근길을 념려하시여 그들과 함께 전차를 기다리시다가 전차가 오는것을 보시고서야 그곳을 뜨시였던것이다.

시당책임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길에 오느라 수고했다고 하시며 친히 종이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시였다. 간밤에 전화로 말씀해주시던 바로 그 그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림을 짚어가시며 출발선에서 한꺼번에 3~5대의 전차가 떠나서 제각기 자기 번호에 해당한 정류소에 가 서게 되면 많은 손님들을 태울수 있고 사람들도 자기 집가까이나 직장가까이에 있는 정류소에서 전차를 타게 되므로 누구나 빠를뿐아니라 전차의 돌림률도 높일수 있다고 하시면서 새로운 전차운행방법을 리해하기 쉽게 가르쳐주시였다.

그것은 전차대수를 늘이지 않고도 몇배나 더 많은 손님들을 나를수 있고 손님들의 차기다림시간을 몇분의 일로 줄일수 있는 참으로 합리적인 운행방법이였다.

시안의 모든 로선들에서 널리 받아들이여 려객수송에서 큰 은을 나타내고있는 번호별 전차운행방법은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속에서 마련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