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손길아래 태여난 희한한 일

 2020.9.3.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동지김정일동지는 불멸의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우리 민족의 현대력사를 찬연히 빛내여주시였을뿐아니라 반만년의 민족사를 옳바로 정립해주시고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쳐주신 민족의 어버이, 절세의 애국자, 대성인이십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자취가 사라져가던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로동당시대에 찬란히 빛내여주시고 후손만대에 전해갈 귀중한 재보로 내세워주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애의 최고화신이시였다.

숭고한 민족애와 한없는 덕망으로 민족의 력사를 찬란히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로동당시대의 희한한 전설이 태여났다.

주체81(1992)년 5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으로 개성시에서 서북쪽으로 20리정도 떨어진 어느 한 산등성이에 있는 왕건의 무덤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왕건의 릉은 곡절많은 이 나라의 력사와 더불어 세월의 풍운속에서 몹시 시달림을 받아왔다. 1361년 홍두군이 침략해오자 재궁(시체가 든 관)을 남쪽에 옮겼다가 지금의 그 자리에 다시 옮겨놓았는데 게다가 일제놈들이 샅샅이 도굴하여 자그마한 릉은 보잘것없었다.

무덤앞에 이르시여 웬만한 지주묘보다도 못한 고려태조왕의 초졸한 릉을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조왕은 고려국가를 창건한 시조왕인데 왕릉이 초라하다고, 몽골의 침략으로 국력이 약해져서 릉을 잘 쓰지 못했을수 있다고, 그러나 태조왕릉을 그대로 두면 태조왕은 누워서도 우리를 욕할것이라고, 력사학자들이 태조왕릉을 고증하고 시조왕의 무덤답게 훌륭히 꾸려야 한다고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저택에서 심어키운 잣솔나무가 있으니 그것을 왕건릉에 가져다 심어주자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소문도 없이 왕건의 묘를 돌아보시고 오래동안 력사속에 묻혀 빛을 내지 못했던 고려태조왕인 왕건의 업적을 공정하게 재평가하시고 내세워주신 소식은 참으로 전설같은 이야기를 낳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건왕릉을 찾으신지 몇달이 지난 주체81(1992) 년 9월 어느날 개성시급양관리소 로동자라고 하는 한 늙은이가 개성시당위원회 책임일군을 찾아왔다.

일군을 만난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왕건릉을 돌아보시고 왕릉을 잘 개건하라는 교시를 주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때로부터 너무나 감격에 겨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는 왕건가문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로인은 왕건이 죽은지도 천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왕건가문이 존재하고있다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앞에서 아연해진 일군앞에 큰 귀중품함을 내놓으면서 왕씨가문의 하늘이신 어버이수령님께 올려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 귀중품함에는 뜻밖에도 고색이 짙은 왕씨가문의 족보와 왕건이 쓰던 옥새(왕이 쓰던 도장)가 들어있었다.

왕건가문의 족보가 나타났다는 개성시당위원회에서 올려온 이 자료를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놀라와하시며 시대가 좋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왕씨가문족보와 왕건의 옥새는 력사의 어둠속에 영영 자취를 감출번한것이였다.

조선봉건왕조가 서자 고려왕씨가문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참살이 감행되였다. 그 무시무시한 판에서 어느 한 왕족이 자기 가문의 족보와 옥새를 가지고 구사일생으로 송도장안을 벗어나 깊은 산골에 숨어버렸다.

그때로부터 어언 600년세월이 흘렀다. 고려태조왕의 후손들은 세월의 흐름과 모진 고난속에서도 가문의 족보를 새로 만들면서 족보와 옥새를 목숨으로 지켜 후대와 후대를 거쳐 전해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의 래력이 세상에 알려지는것을 꺼려하였다. 해방후 로동당시대를 맞아 온 세상이 천지개벽을 하였어도 왕씨자손들만은 어쩐지 봉건왕의 가문이라는 떳떳치 못한 과거를 내놓기 저어하였다. 그리하여 100년도 여섯번이나 흐른 기나긴 세월 무수한 수난과 곡절속에서 귀중한 옥새와 족보는 한낱 한가정의 가보로 어둠속에 잠겨있게 되였다.

그런데 그 왕씨자손들이 나라일에 바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멀리 개성에 있는 왕건릉에까지 찾아오시여 왕건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국가의 창건자이므로 그의 무덤을 잘 꾸려주자고 은정넘치는 교시를 주시였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던 격동적인 소식을 접하고 눈물로 몇밤을 지새운 왕씨자손들은 선조들의 마음까지 합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어버이수령님께 감사를 드리였다. 그리고 하늘같은 그 사랑과 은덕이 너무도 크고 고마와 수백년이나 고이 간직해내려오던 왕씨가문의 족보와 왕의 옥새를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리자고 결심하였던것이다.

가문의 가장인 로인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우리 수령님은 하늘의 태양이시다. 태조왕이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난대도 옥새를 희세의 위인께 삼가 드렸을것이다.》

우리 인민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희세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나라 력사에 빛을 뿌려주시니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였다.

왕씨가문의 족보와 왕건의 옥새가 600년세월이 주름잡혀 드디여 어버이수령님께 바쳐졌다는 희한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력사를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과 함께 만사람을 놀래우며 로동당시대의 전설로 길이 전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