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장군님의 후대사랑이 꽃핀 수지연필공장

 2021.11.2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대원수님들처럼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불러주시고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당과 국가의 제일중대사로 내세우시며 한평생 학생소년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그런 위대한 어버이는 세상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불러주시고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당과 국가의 제일중대사로 내세우시며 한평생 학생소년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숭고한 후대관은 수지연필공장건설에도 어리여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0(1981)년 12월 24일 아침 한 일군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일군이 집무실에 도착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곽속에서 류다르게 생긴 연필을 한자루 꺼내주시며 이것이 수지연필이라고, 이 수지연필은 깎을 필요가 없을뿐더러 연필심도 수지를 섞어 만들었기때문에 잘 부러지지도 않아 쓰기에 아주 편리하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일군에게 수지연필을 써보게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린 학생들이 연필을 깎을 때 연필심이 자꾸 부러지기때문에 연필을 깎기 힘들어할뿐아니라 연필 한자루를 가지고 얼마 쓰지도 못한다고, 수지연필공장을 짓기 위한 사업을 빨리 추진시켜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몸소 계산을 해보시며 앞으로 짓게 될 수지연필공장의 규모와 생산능력을 규정하여주시였다. 그것은 모든 공정과 설비를 일식으로 다 갖춘 그러면서도 몇해안으로 온 나라의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는 능력의 가장 현대적인 수지연필공장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금때문에 걱정하는 일군에게 그것은 념려말라고, 어린이들에게 좋은 연필만 만들어줄수 있다면 돈이 많이 들어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어린이들을 잘 키워야 나라를 부강하게 할수 있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교시에는 조국의 미래인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고 온갖 배려를 다 돌려주시려는 한없이 숭고한 사랑이 넘쳐흐르고있었다.

그날 밤 일군을 다시 부르시여 아침에 말한 수지연필공장건설을 어떻게 추진하고있는가를 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요대상건설들도 있는 조건에서 공장건설을 뒤로 미루려는 일군에게 수지연필공장을 하루빨리 건설하려는 의도를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후 갓 창설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첫 회의 의정으로 연필문제를 내놓으시고 우리 나라에 연필공장부터 세우도록 해주신것은 그때 건설할 대상이 없어서 연필공장부터 먼저 짓도록 하시였거나 자금이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신것이 아니라 후대교육을 위한 사업을 혁명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보시였기때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 이 땅에 연필공업의 새 력사를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 온 나라 어린이들이 현대적인 수지연필을 쓰는것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고 하시면서 수지연필공장건설도 동시에 다 밀고나가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몇달이 지난 주체71(1982)년 3월말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지연필견본품들을 보아주시려 일군을 또다시 부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이 가져온 20여가지나 되는 많은 연필들을 하나하나 분해도 해보시고 종이우에 글을 써도 보시고 웃주머니에 꽃아도 보시기를 몇번 거듭하시며 그중에서 심이 제일 가는것과 비교적 굵은 두가지 형태의 수지연필을 골라잡으시였다. 그러시고 그 두가지 가운데서도 대에 꽂개가 없는 빨간색수지연필을 집어드시고 다시금 이모저모로 살펴보신 후 이것을 원형으로 해서 나머지 수지연필들을 형타만 조금씩 바꾸면 될것이라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학용품 한가지를 마련해주어도 어떻게 하면 그들의 심리와 교육적인 목적에 맞게 가장 좋은것으로 해줄것인가에 대하여 마음쓰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수지연필공장건설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터전을 잡아주시고 건물의 크기와 형태까지 선정해주시였다. 그리고 방금 건설이 시작된 그때에 벌써 앞으로 공장의 관리운영을 미리 예견하시여 기능공들을 양성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생산하는 수지연필의 자호도 흑색수지연필은 《백두산》, 《첫의정》, 《삼흥》, 《목란》, 《진달래》, 《속도전》, 《지덕체》, 《최우등》을 비롯한 15가지로, 색수지연필은 《공작》 또는 《무지개》로 그 자호까지 하나하나 제정해주시였다.

수지연필공장건설이 한창 진행되고있던 주체71(1982)년 11월 중순 어느날 평양에서 열린 어느 한 일용제품전시회장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지연필이 놓여있는 진렬대앞에 이르시여 일군들에게 수지연필의 우월성과 그것을 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시고 지금 우리가 생산하는 연필은 색이 12가지도 되지 않지만 이번에 건설하는 수지연필공장에서는 24가지 색을 가진 연필을 생산하게 된다고 교시하시였다.

수지연필을 한줌 가득히 움켜쥐신채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제 멀지 않아 전국의 인민학교(당시)학생들에게 이런 수지연필이 다 차례지게 될것이라고 교시하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기쁨이 한껏 어려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지연필에 지우개가 없는것을 보시고 고무지우개도 자체로 만들어 달아주며 수지연필을 여러가지 형태와 색갈로 만드는데 필요한 형타와 원료는 어떻게 해결하고 연필심감은 어떤 모양으로 만들며 앞으로 수지연필을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공급해주어야 하겠는가 하는 등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보다 더 좋고 현대적인 연필을 안겨주시기 위해 그토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기에 수지연필공장이 조업하였을 때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시며 공장에서 생산한 수지연필견본을 보시고 그것을 곧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73(1984)년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일을 계기로 전국의 인민학교(당시)학생들에게 일제히 수지연필을 안겨주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우리 인민들은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서 귀중한 자금도 아낌없이 돌려주시고 몸소 공장건설의 전반사업을 보살펴주시면서 온갖 정력과 심혈을 기울이시여 또 하나의 만년대계의 재부인 현대적인 수지연필공장을 마련하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후대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