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에 대한 이야기

 2021.11.2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은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를받으시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시였다.》

한평생 인민들과 함께 계시며 수수하고 검박하게 생활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후부터 수십년세월 우리 인민들에게는 훌륭하고 현대적인 살림집을 마련해주시면서도 자신의 저택만은 일체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시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의 절절한 소원을 담아 당시 금수산의사당을 지어드리시여 수령님께서 집무를 보시도록 해주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수령님께서 이제는 좋은 저택에서 생활하실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게 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세상사람들은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계시던 저택이 얼마나 평범하고 검소하였던가를 다는 알지 못하고있다.

하기에 수령님의 저택을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과 실망을 금치못하군 하였다.

주체73(1984)년 1월초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던 어린 녀성동무가 처음으로 수령님의 저택을 돌아보게 되였는데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몹시 놀랐다.

나무로 된 수수한 출입문의 문손잡이로부터 크지 않은 방안에 놓여있는 옷장이며 책장, 걸상, 침대 등 가구는 물론 전등갓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것들이였기때문이였다.

사실 그때 그는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좋은것들을 고르고골라 인민들이 지성껏 마련한 훌륭한 저택에서 살고계실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생각과는 다르게 너무도 작고 평범한 저택을 보게 되니 어찌나 서운한지 눈물이 다 나왔다.

후날 그는 아무래도 그 심정을 묵새길수 없어 외람되게도 어느 한 기회에 수령님께 이 저택은 한 나라의 수령을 모시기에는 너무나 수수한것 같다고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집이나 크고 요란해야 뭘 하겠는가, 인민들이 사는 집에 비하면야 자신에게는 이런 집도 과남하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평양시에 천리마거리, 락원거리, 문수거리에 이어 현대적인 창광거리 1계단 살림집들이 일떠서고 2계단 공사의 완공도 눈앞에 두고있던 때였다.

인민들은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궁궐같은 집을 쓰고 살게 되였다고 모두가 고마움의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소박한 저택도 자신께는 과남하다고만 하시는것이였다.

《이젠 우리 인민들도 훌륭한 집에서 사는데 가구나 비품 같은것이야 좋은것으로 갖추어놓으실수 있지 않습니까.》

그의 청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나직한 어조로 자신께서는 원래 인민들보다 더 좋은것을 쓰고사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은 우리 인민들의 생활도 그리 풍족하지 못하고 나라에 돈도 많지 못한데 자신께서 어떻게 요란한 집에서 좋은것들을 쓰고 살겠는가, 그저 우리 나라에서 만든 수수한 가구와 비품, 옷과 신발, 그릇가지들이 제일이고 그것이면 만족하다, 돈을 쓰겠으면 인민생활에 하나라도 보탬을 주는 일에 써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으시고 우리 인민들에게는 더욱더 좋은것만을 안겨주고싶어하시는 수령님의 고결한 풍모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져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정말 이 세상에 인민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 수령님 같으신분은 없습니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그래서 자신의 좌우명이 이민위천이 아닌가고 하시는것이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을 다시 꾸릴데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여 그해 12월초 어느날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 이에 대해 보고드리면서 지금 쓰고사시는 저택이 지은지 오래 되고 작아서 다시 꾸렸으면 좋겠다고 또다시 간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을 돌아보시며 동무들의 성의는 고맙다, 그런데 이 집이 어째서 그러는가, 집이나 크고 출입문이나 요란하면 뭘 하겠는가, 사람은 항상 검박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자신께서는 지금 사는 이 집이면 만족하다고 교시하시였다.

그 말씀에 담겨진 간곡한 뜻이 일군의 가슴을 울리였지만 그는 모처럼 차례진 이 기회에 어버이수령님께 다시한번 간청을 드리였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이 아직도 다 좋은 집을 쓰고살지 못하고있는데 자신께서 집을 다시 지으면 우리 인민들의 집을 지을 자재를 더 쓰게 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다시는 그런 제의를 하지 않기로 하자고 다짐을 받으시고나서 우리 인민들은 정말 좋은 인민이다, 그렇기때문에 자신께서는 인민들의 정성이 지극할수록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을 하루빨리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히고 더 좋은 생활조건에서 잘살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이렇게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 모두에게 좋은 집들을 마련해주시려고 마음쓰시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지은지 오래된 작고 소박한 저택에서 생활하시였다.

정녕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꼭같이 수수하고 평범하게만 사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을 돌이켜보며 우리 인민은 마음속으로 심장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