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첫 인민경제계획은 1947년 인민경제계획이다.
해방후 조선에서는 정권이 인민의 손에 넘어오고(1946년 2월 8일 림시인민위원회수립) 력사적인 민주개혁 특히 토지개혁(1946년 3월 5일)과 중요산업의 국유화(1946년 8월 10일)가 실시되여 우리 인민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킬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금년에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인민경제계획을 작성하고 수행하게 됩니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은 일제에 의하여 파괴된 나라의 경제를 시급히 복구발전시키고 민족경제를 건설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졌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의 기본방향은 일제에 의하여 파괴된 민족공업을 복구발전시키면서 생활필수품생산을 증대시켜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것이였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에는 1946년에 비하여 공업생산을 92%, 공업부문에서의 로동생산능률은 48%, 천생산은 2.5배 더 높이고, 알곡을 30만t 더 증수하는것을 비롯하여 공업과 지방산업, 농촌경리, 운수, 체신, 상품류통, 문화, 교육, 보건부문의 구체적인 과업들이 제시되였다.
구체적으로 1947년에 국영공업총생산액계획은 102.5%, 공업에서의 로동생산능률은 51%, 지방산업의 생산계획은 125.4%로 넘쳐 수행되였으며 농촌경리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류안비료의 생산은 1946년에 비하여 2배이상, 철도화물수송량은 2.5배, 상품류통액은 9배이상 늘어났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의 성과적실행은 조국의 자유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자립적민족경제의 기초를 쌓는 위업에서 커다란 첫걸음을 내디딘것으로 되며 새 생활을 건설하는데서 조선인민이 이룩한 큰 승리이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이 성과적으로 수행된 결과 일제의 식민지통치의 산물인 경제의 식민지적기형성과 편파성을 없애고 우리 인민의 물질문화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민족경제의 자립적토대를 닦는데서 중요한 전진을 이룩하고 생산을 정상적인 궤도우에 올려세웠으며 인민경제를 계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귀중한 경험과 토대가 마련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