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전시 조선녀성들의 대중운동-녀성보잡이운동

 2025.7.24.

조선의 녀성들은 지난 시기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힘있게 떠밀어나가는 국가사회발전의 힘있는 력량으로서 혁명과 건설에서 일대 변혁을 안아왔다.

이 자랑스러운 대중운동의 력사속에는 준엄했던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 조선녀성들이 힘있게 벌린 녀성보잡이운동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녀성들은 항일혁명투쟁시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손에 총을 잡고 피어린 투쟁을 벌렸으며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전선과 후방에서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결사전에 참가하여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농촌의 녀성들은 《전선에 나간 남편과 아들과 오빠를 대신하여 식량증산으로 원쑤들에게 복수의 죽음을 주자!》고 하면서 보잡이운동에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이 운동에서 특히 인민군대후방가족, 애국렬사유가족 녀성들이 선봉적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적기의 야수적폭격속에서도 소잔등에 위장을 하고 밤낮을 가림이 없이 보를 힘있게 틀어잡고 논밭을 갈았다.

녀성보잡이운동의 선구자인 김락희녀성은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며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많이 내자!》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투적호소를 가슴에 새겨안고 녀성보잡이운동의 선두에 섰다.

녀성보잡이운동의 선구자 김락희
사진. 녀성보잡이운동의 선구자 김락희

처음 보잡이를 시작하던 나날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너무도 힘에 부쳐 여러번 지쳐쓰러졌던 김락희녀성은 목숨을 바칠지언정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땅, 선렬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는 땅을 한치도 묵일수 없다, 이런 각오를 가다듬으며 보탑을 억세게 틀어잡고 500여평이나 되는 논을 혼자힘으로 다 갈아엎었다. 그의 모범을 따라 단 며칠사이에 40여명의 녀성들이 보잡이로 떨쳐나섰으며 녀성들로 무어진 봄밭갈이돌격대까지 조직되였다.

김락희녀성은 그후 마을녀성 80여명을 이끌어 보잡이들로 키워냈으며 논에 랭상모를 도입하여 정보당 13t의 벼를 생산함으로써 전시식량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락희녀성의 모범은 삽시에 온 나라 농촌에 보급되였으며 수천명의 녀성들이 저저마다 보탑을 잡고 밭갈이에 떨쳐나섰다.

녀성보잡이운동이 대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어진 결과 1952년 황해도에서만도 5 000여명의 녀성보잡이가 나왔다. 송화군 흥암리녀성들은 전선에 나간 남편들을 대신하여 녀성보잡이돌격대를 뭇고 한알의 쌀이라도 더 내기 위하여 자기 마을뿐아니라 이웃마을에까지 가서 묵은 땅을 일구고 적들과 싸우면서 농사를 지었다.

1952년 3월 하순 배낭과 농쟁기를 걸머진 73명의 흥암리녀성들은 자위대원들과 함께 일곱마리의 소를 끌고 이웃마을에 가서 30정보가 넘는 밭갈이와 씨뿌리기를 성과적으로 끝내였으며 초도로부터 기여드는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를 벌리면서 피땀으로 지은 낟알을 전선으로 실어날랐다.

이처럼 녀성보잡이운동은 농촌에 부족하였던 로력문제를 해결하며 한치의 땅도 묵이지 않고 전시증산을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이 운동은 보잡이는 남자만 하는것으로 생각하여왔으며 또 그렇게 전해왔던 오랜 전통적인 관습을 타파하고 사상적으로 녀성들을 단련하는데서도 큰 의의를 가지였다.

참으로 전시 녀성보잡이운동은 지난날 지지리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그것을 숙명처럼 여기여오던 조선의 녀성들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한치땅도 묵일수 없다는 불굴의 정신을 지닌 조국의 수호자, 자주적인간으로 다시 태여나게 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