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또다시 찾아오신 사연

 2024.9.3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인민을 잘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의 소원이였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는 농민들에게도 바쁜 계절과 덜 바쁜 계절이 있건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농사일을 직접 맡아 지도하시며 한평생 험한 포전길을 쉬임없이 걸으시였다.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헌신의 로고를 많이도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현지지도길은 흰눈덮인 겨울에도 끝없이 이어지였다.

주체52(1963)년 1월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마간이라도 휴식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황해북도에 내려와계시였다. 휴식하기 위하여 오셨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으시고 로고에 로고를 거듭하시던 그이께서는 밤새껏 내린 눈길을 헤치시며 서흥군 당현리(당시)를 찾으시였다.

그날 우리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한 작업반장을 만나 농장의 실태와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알아보시다가 이 고장에 논이 한뙈기도 없기때문에 농장원들이 백미구경을 못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아직도 펴이지 못한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이 마음에 걸리여 찬바람부는 길가에 오래도록 서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의 거듭되는 재촉을 받으시고서야 차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의 고장을 다녀가시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은 농장원들이 밤새 잠들지 못하며 기쁨에 넘쳐있던 그 시각 우리 수령님께서도 그들의 생활을 놓고 잠 못 이루고계시였다.

밤이 퍽 깊었다고 말씀올리는 일군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래일 다른 일을 뒤로 미루더라도 농장에 다시 가서 농장원들과 만나 그들의 생활개선대책을 의논해보자고 하시면서 정치위원회결정도 있고 해서 며칠간 쉬려고 왔지만 산간지대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한것을 보고 자신께서 어떻게 편히 쉴수 있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다음날 당현리를 또다시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오랜 시간 농장이 잘살 방도를 의논해주시였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인민을 잘살게 하시려 한평생 온 나라의 곳곳에 헌신의 자욱을 수없이 새겨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