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교수 박사 한은경
2025.4.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중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조선혁명의 주체확립과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탁월한 사상을 천명하신것이다.
자주로 빛나는 조선혁명의 전 과정을 놓고볼 때 성스러운 항일무장투쟁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다홍왜회의에 대하여 돌이켜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다홍왜회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의 기발을 들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견지하고 그 권리를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린 대사상전이였다.》
다홍왜회의는 공청만주성위 순시원이였던 종자운이 동만지방 조선사람들의 70%가 《민생단》이라는 허황하기 그지없는 보고를 성당조직에 제출한것이 동기가 되여 소집되게 되였다.
다홍왜회의가 진행될 당시 동만의 각급 당조직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전개되였고 그로 하여 견실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민생단》으로 몰려 무리죽음을 당하는 참사까지 빚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식적인 결정을 채택하는것으로 되여야만 반《민생단》투쟁문제를 바로잡을수 있다고 인정하시고 이를 위한 회의를 소집할것을 동만당지도부에 제기하시였다.
1935년 2월 24일부터 열흘가량 진행된 다홍왜회의에서 좌경배타주의자들은 조선사람들은 거의다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조선사람들은 간부로 될수 없고 민족해방의 구호를 들어도 안된다는 그릇된 주장을 들고나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황당한 궤변에 격분하시여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데 그러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는가, 또 조선의 혁명가들이 80~90%가 《민생단》이라면 무엇때문에 3~4년동안 유격근거지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피흘리며 싸워왔겠는가, 그들이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능히 알수 있는 일이라고 론박하시였다.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벌써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되는것이라고, 이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리치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을 협애한 배타주의적목적과 불순한 종파적야욕을 달성하는데 리용하려는자들의 죄행을 준렬히 단죄하시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부문제를 조중인민의 전투적단결과 반일공동투쟁을 강화하는데 부합되게 해결하여야 하며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능력을 위주로 하여 간부들을 선발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승리, 조선민족해방위업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그 누구도 막을수 없고 대신할수도 없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인민의 자주적권리이며 신성한 의무라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히시였다.
다홍왜회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의 기발을 들고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견지하고 그 권리를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린 대사상전이였다.
다홍왜회의를 계기로 조선혁명은 위기에서 구원되였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은 주체의 기치따라 힘차게 전진될수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민생단》의 루명을 벗고 대오안에 조성되였던 반목과 불신, 공포의 분위기가 가셔져 혁명대오의 단합이 이룩되게 되였다.
이렇듯 다홍왜회의를 분기점으로 하여 조선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으로, 절세의 애국자로 더욱 높이 우러르며 따르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