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위인과 무용《사과풍년》

 2022.4.2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무용<사과풍년>은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잘된 작품입니다.》 (김정일전집》 제17권 226페지)

주체58(1969)년 8월 중순의 어느날이였다.

이날 예술영화촬영소 배우들의 기량훈련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물캐는 처녀들의 춤을 보아주시였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춤이 끝난 다음에도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아무말씀도 없으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용배우들에게 동무들은 오늘의 사회주의협동농장원들로 영화에 나오겠는데 옛날 산골처녀들처럼 나물이나 캐는것이 마음에 드는가고 물으시였다.

무용배우들은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그들도 오늘의 협동농장처녀들의 춤으로 산나물이나 캐는것은 맞지 않는다는것이 느껴졌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손을 허공에 드시여 무엇인가 따는 동작을 해보이시며 사과따는 춤을 잘 만들면 현대감도 있고 보기도 좋지 않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무용배우들의 얼굴은 일시에 확 밝아지는듯하였다.

사과따는 춤! 무용배우들의 눈앞에 백과주렁진 아름다운 과원과 그속에서 사과를 따는 처녀들의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이 안겨왔다

나물캐는 춤과 사과따는 춤,이 두 춤은 시대와 생활감정에서,아름다움과 률동성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그후 며칠이 지난 8월 24일 다시금 예술영화촬영소 배우단의 기량훈련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용작품들을 지도해주시였다.

이날 무용예술인들이 준비한 춤들을 다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춤동작이 적고 조화롭지 못한것이 기본결함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무용이 참다운 예술로 되자면 생활을 생동하고 풍부한 춤동작으로 표현하여야 하며 높은 수준에서 조화를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용《사과풍년》을 어떻게 하면 생동한 춤동작들로 엮으며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나가겠는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무용《사과풍년》에서는 사과를 따는 동작이 기본동작인데 그것을 그냥 팔을 올려따는것으로만 하지 말고 손목을 한번 비틀어따게 하면 고유한 춤동작이 되지 않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이 춤은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는 춤이니 나무가지를 이쪽저쪽으로 헤치는 동작도 있을수 있고 풍년든 과원에서 벌어지는 흥겨운 로동을 보여주는 춤이니 우리의 민속무용에 고유한 어깨춤동작 같은것도 잘 살릴수 있을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여러명의 처녀들이 나와 사과를 따는 동작만 하면 생활감을 크게 주지 못하고 재미도 없을터이니 그들가운데서 한명은 일욕심이 많은 처녀로 만들어놓고 그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엮어나가면 생활을 보는듯한 좋은 춤이 될것이라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무용배우들의 얼굴은 커다란 죄책감과 함께 크나큰 감격과 기쁨에 넘쳐있었다.

사실 처음으로 만들어진 무용《사과풍년》은 높은 수준에서 조화를 실현하지 못한 결함이 있었다.

창작가들은 로동생활을 가식없이 그린다고 하면서 손동작이나 발동작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뿐 아니라 가로세로 그어지는 선이나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무용수들의 대형과 같은데서도 조화를 보장하지 못하였다.

사실 무용은 생활을 규칙적인 음악적리듬에 맞추어 담으며 몇분안팎의 시각적인 효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주어야 하는 예술이기때문에 사소한 부조화가 무용작품전체를 망쳐놓을수도 있는것이다.

무용창작가들이 그때까지 조화의 원리를 잘 모르고있은것은 무용극이나 독무에 치중하면서 군무를 홀시해온데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그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조화의 원리를 파악한 다음에야 비로소 구도의 조화, 동작의 조화, 속도의 조화 등 무용전반의 조화를 빈틈없이 실현해나갈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화야말로 무용예술의 생명으로 된다는것을 여러번 강조하시였다.

무용《사과풍년》에서 이처럼 형상의 조화가 실현됨으로써 그 시각적인상이 몇배로 강하여지고 군무의 중심에 선 일욕심이 많은 처녀의 사랑스러운 개성도 두드러지게 살아날수 있었다.

사과따기에 욕심을 내다가 동무들을 잃고 헤덤비는 처녀, 동무들과 함께 다른 밭으로 가다가도 미처 따지 못한 높은 가지의 사과 한알에 마음이 가서 다시 돌아와 그것을 따가지고야 유쾌히 달려가는 처녀, 생활적이며 성격적인 처녀의 그 형상은 전적으로 무용전반의 조화속에서만이 빛을 낼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나라의 농촌처녀들의 소박한 로동생활을 그린 무용《사과풍년》은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밑에 명작으로 완성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