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음악과 위인의 정치

 2019.9.12.

음악은 사람들에게 생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풍부한 정서, 약동하는 생기, 래일에 대한 희망과 랑만을 안겨주는 인간생활의 가장 친근한 예술이다.

이 세상에 음악의 천재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위대한 장군님처럼 음악에 대한 천재적인 감수성을 지니시고 그처럼 음악을 사랑하신분은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고중시절에 음악은 내 인생의 첫사랑이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음악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꿈의 노래가 아니라 항일혁명투사들이 결전장에서 부르던 빨찌산의 노래에서 시작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쪽무이포단에 감싸인 아드님에게 처음으로 불러주신 노래는 빨찌산의 자장가였고 해방직후 어머님과 함께 조국으로 오실 때에도, 주체35(1946)년 1월 1일 부모님들과 함께 만경대일가분들을 찾아가신 날 어리신 장군님께서 부르신 노래도 혁명가요였다.

모든 사물현상을 음악적으로 감수하는 비범한 천품과 특출한 정서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린 시절에 새들은 우는게 아니라 노래한다고 하시였으며 이 세상 모든것에는 노래가 있다고 하시였다.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생도 참을수 있고 어떤 불행도 이겨낼수 있다, 노래와 함께 사는 사람은 언제나 이긴다, 사람은 죽어도 노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어머님의 말씀은 위대한 장군님의 장래운명에 결정적영향을 주는 격언이 되였고 그때부터 음악은 위대한 장군님의 벗이 되고 한생의 동행자가 되였다.

자신께서는 어머님을 잃은 다음부터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되였다고, 음악은 어머님의 상실로부터 오는 우울증을 해소시켜주었고 고독과 슬픔을 물리쳐주었다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은 자신의 충실한 벗이였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은 장군님께서 안고계신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쓰라린것이였고 그 아픔을 음악으로 어떻게 이겨내시였으며 음악이 어떻게 자신의 첫 사랑으로 되였는가에 대한 심중의 말씀이였다.

인민을 불러일으키자면 그들의 정신을 고무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연설이나 혁명사상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다, 음악은 인민의 정신에 불을 지피며 그들의 도덕과 정신을 고상한 정서세계에로 인도한다는것이 음악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견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가슴에 새기시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혁명투쟁과 인간생활에서 문학예술이 노는 역할을 강조하시였으며 인류음악사에 음악은 인간학이라는 명언을 아로새겨주시고 《음악은 정서적인 계산법과 조화의 묘술을 준다》라는 명제까지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음악은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힘있는 무기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8권 173페지)

음악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음악이 혁명투쟁과 인간생활에서 노는 역할을 일찌기 체득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중학시절에 리면상, 김옥성과 같은 작곡가들을 제일 사랑하시였으며 음악가들과 남다른 인연을 맺으시고 그들이 우리 나라 음악계를 대표하는 음악의 대가들로 성장할수 있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작곡가 한시형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혁명가요들을 발굴정리하고 민족의 음악유산을 풍부히 하는데서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으며 작곡가 김혁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니시던 시절의 체험과 그이의 사상을 그대로 전개하여 전인민적인 송가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창작할수 있었다.

음악은 항상 위대한 장군님의 심장을 끓게 했고 조국의 휘황한 미래를 위해 한몸을 아낌없이 바쳐 시대와 력사앞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시려는 숭고하고 굳은 맹세로 불타오르게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는 소년시절에 내가 한평생 음악과 떨어질수 없는 운명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혁명가요를 부를 때면 그 아름답고 힘찬 선률이 나에게 인민을 사랑하라, 동지를 사랑하라, 그러면 이제 너의 동지들이 너에게 인생의 모든 행복을 가져다줄것이며 너는 그들과 함께 혁명가의 보람찬 삶을 누리게 될것이라고 고무해주었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생은 이처럼 음악으로 시작되고 음악과 함께 우리 혁명을 이끌어오신 한생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2(2003)년 6월 28일 어느 한 전자악단의 일군들과 창작가들앞에서 하신 연설에서 자신께서는 일생동안 음악과 함께 생활해왔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정치라는 세상에 없는 정치방식을 창조하시고 음악과 더불어 장장 반세기이상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를 창작하시면서 울리신 수령송가의 포성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전당과 온 사회의 사상의 일색화를 위한 전주곡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20세기 문예부흥이라고 일컫는 주체문학예술의 대전성기를 안아오신분도, 형언할수 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과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을 혁명군가의 장엄한 포성으로 헤쳐오신분도 바로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하기에 우리 조국의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시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제국주의자들을 타승하고 혁명의 승리를 이룩하였을 때 이 투쟁을 이끈 령도자가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령장이였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한 참다운 인간이였다는것을 생각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노래와 함께 전진하는 당을 건설하시고 노래와 함께 살며 일하는 인민을 키워주시였으며 노래와 함께 쓰는 조선혁명의 영광스러운 력사를 수놓아오시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혁명은 류례없이 간고한 환경속에서 겹쌓인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리적으로 전진하여왔다. 조국의 해방을 위한 항일혁명투쟁은 더 말할것도 없고 새 사회건설과 조국해방전쟁, 전후복구건설,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비롯하여 우리 당과 인민이 벌려온 혁명은 참으로 간고하고 준엄하였다. 우리 혁명이 그처럼 간고하고 복잡하였기에 우리에게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류달리 많았다. 그가운데는 우리 인민들에게 혁명적신념과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 노래도 있고 멸적의 투지와 열정이 솟아나게 하는 노래도 있으며 당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안겨주는 노래도 있고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북돋아주는 노래도 있었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작된 수많은 혁명가요들과 전쟁의 엄혹한 환경속에서 나온 전시가요들, 전후복구건설시기와 천리마대고조시기에 나온 많은 노래들이 다 그런 노래들이였다.

우리 인민은 바로 이런 시대의 명곡들을 힘차게 부르며 간고한 우리 혁명의 숫눈길을 헤쳐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1월 1~2일 우리 당은 음악이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서 큰 역할을 하기때문에 음악작품을 창작하고 보급하는것도 하나의 정치로 보고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음악정치를 펴고있다, 음악을 중시하고 음악을 정치의 위력한 수단으로 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밀고나가는것이 바로 음악정치이며 음악으로 사람들의 정서생활을 풍만하게 하고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가는데 음악정치의 특성이 있다, 철의 신념과 뜨거운 인간애로 혁명을 령도하는 당만이 음악을 중시하고 음악정치를 할수 있는것이다고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의 음악정치를 높이 받들고 혁명과 건설에서 승리와 기적을 창조해온것처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시대의 진군가들을 더 높이 부르며 노래로 시작된 우리 혁명을 노래로 기어이 승리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