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태여난 《들꽃소녀들》

 2021.4.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시고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령도자이시고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못 잊을 추억의 갈피를 더듬어본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 《들꽃소녀들》에게 돌려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있다.

주체85(1996)년 6월 22일이였다.

이날은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느 한 인민군부대를 현지지도하신지 44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였다.

그때 11살이였던 김명희동무는 동생을 데리고 옆집동무와 함께 해마다 그러했던것처럼 여러가지 들꽃들을 하나둘 꺾어서 자그마한 들꽃묶음을 만들었다.

아침일찍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표식비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들꽃묶음을 드린 그들은 오전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곳에 들려 관리사업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먼발치에서 승용차 몇대가 현지지도표식비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들은 오늘이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이곳을 다녀가신 현지지도 기념일이여서 일군들이 찾아오는것으로 알고 얼마간 떨어진 주변수림속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잠시후 차들이 도착하여 문이 열리는데 아니 글쎄 위대한 장군님께서 내리시는것이였다. 언제나 뵙고싶던 아버지장군님이여서 그들은 한달음에 달려가 따사로운 그 품에 막 안기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장군님의 귀중한 시간을 잠시나마 지체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며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지척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뵈옵고있는것만도 더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행복한 순간이 다문 얼마만이라고 계속되였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였다.

현지지도표식비앞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현지지도하신지 44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시선이 현지지도표식비앞에 정히 놓여있는 들꽃묶음에 멎어섰다. 인적드문 그곳에 생신한 들꽃묶음이 놓여있는것이 여간 놀랍지 않으신듯 위대한 장군님께서어버이수령님과 자신께서 현지지도한 날을 맞으며 누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꽃다발을 가져다놓았다고 하시였다.

그 꽃다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교양육성된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 청소년학생들은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수령님을 더욱 그리워하고있으며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수령님의 영생을 기원하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곱게 핀 들꽃묶음앞에서 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헤아리신 그 시간과 장군님을 뵈옵는 무한한 행복속에 그들이 보낸 시간.

정녕 그 시간은 령도자와 인민간에 오가는 뜨거운 정이 어떤것인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잊지 못할 순간이였다.

세상에 나라는 많아도 이런 감동깊은 화폭이 펼쳐진 례를 알지 못하고있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 소행의 주인공들이 어린 소녀들이라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평범한 로동자의 딸들이라고 하는데 정말 기특한 어린이들이라고 하시며 그들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도록 하시고 선물이 하루빨리 가닿도록 비행기까지 띄워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들 세 소녀들을 모두 평양에 불러 한달동안이나 최상의 혜택을 받으며 평양견학의 나날을 보내도록 해주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방송모임과 설맞이모임에 참가시켜주시였으며 김명희소녀에게는 조선소년단원의 최고영예인 김일성소년영예상까지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그 사랑, 그 은정에 떠받들리워 그들의 소행은 온 나라가 다 알게 되였으며 사람들속에서 《들꽃소녀들》로 불리우게 되였다.

주체92(2003)년 1월 17일이였다.

맵짠 날씨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김명희동무가 복무하고있던 부대를 찾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와 혁명사적교양실을 비롯한 부대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훈련정형과 군인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11살 소녀시절부터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안으며 성장해온 그는 장군님을 만나뵈오면 감사의 인사를 올리리라 늘 마음다지고있었건만 눈물이 앞서 인사의 말씀도 제대로 올릴수 없었다.

그러는 그를 정깊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 동무가 바로 몇해전 어느 한 군부대에 있는 수령님의 현지지도표식비에 들꽃묶음을 드렸던 동무라고 하시며 이렇게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다고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마치도 오래간만에 만난 딸자식인양 대견스러운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몇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현지지도길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세워놓은 현지지도표식비앞에 희한한 꽃다발이 아니라 들판에 흔히 있는 꽃을 가지고 만든 들꽃묶음이 놓여있는것을 보았다고, 그것을 보는 순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들꽃묶음을 놓은것을 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행같았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그에게 앞으로 군사복무를 잘하여 훌륭한 병사가 되기 바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부대를 떠나신 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다준 사랑이 있으신듯 사랑의 《봄향기》화장품도 보내주시고 그의 건강이 념려되시여 귀중한 보약까지 안겨주시였다.

우리 혁명의 년대기우에는 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한마음 어머니당만을 우러러따르는 억세고도 순결한 불패의 통일단결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의 법동농민, 락원의 신포향, 전후복구건설시기의 태성할머니, 자강도의 구봉령도로관리원…

세상을 들썩하게 하는 공적을 세운것도 아니고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은 영웅들도 아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사람들의 추억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그것은 바로 거기에 수령과 인민간의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련계를 말해주는 우리 혁명의 불패의 위력에 대한 참된 진리가 담겨져있기때문이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은 온 나라 천만군민을 한품에 안아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우리모두의 영원한 태양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