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김철우
2021.8.19.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가는 곳마다에 소문난 명승지들이 많은데 명승지들에 휴양소와 정양소, 야영소들도 건설하고 인민들이 늘 찾아와 마음껏 즐기며 놀수 있게 잘 꾸려놓아야 합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1권 415페지)
수정같이 맑은 석담천의 물이 흘러내리는 돌못과 아홉개의 골짜기마다에 펼쳐진 이채로운 풍경으로 이름난 서해명승 석담구곡.
황해남도 벽성군에 자리잡고있는 석담구곡은 맑고 정가로운 내물, 기기묘묘한 바위들, 철따라 피는 아름다운 꽃들과 푸른 소나무, 단풍나무들로 하여 예로부터 서해의 명승으로 일러왔다.
수양산줄기의 지남산에서 시작하여 조선서해로 흘러드는 석담천은 그 중류지역에 와서 굽이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며 고유한 산골짜기의 독특한 풍경을 펼쳐보이고있다.
바위벼랑들과 푸른 못, 맑은 시내, 우거진 소나무숲이 력사유적들과 아담한 휴양각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있는 다섯번째 골짜기인 은병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석담구곡이 유명해지게 된것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유학자 률곡 리이가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량반자제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그러나 지난날 이곳은 량반자제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봉건통치배들과 부자놈들, 왜놈들에게 유흥을 돋구어주던 곳이였다. 봉건통치배들과 왜놈들에게 억눌리고 짓밟히던 그때에는 이곳의 아름다움도 인민들에게는 기쁨이 아니라 원한과 슬픔만을 주었었다.
석담구곡이 진정한 인민의 명승지로 전변되게 된것은 언제나 인민의 행복을 제일먼저 생각하시며 위민헌신의 한평생을 걸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을 위한 사랑의 현지지도가 이곳에 새겨진 때부터였다.
주체37(1948)년 8월 21일
이날 황해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석담구곡을 찾아주시였다.
석담구곡에 도착하시여 주변전경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석담구곡이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와보니 정말 경치가 좋다고 하시면서 여기에 우리 인민들이 마음껏 휴식할수 있는 휴양소를 건설하면 해주시민들이 와서 휴식하기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석담구곡에 있는 소현서원의 외부와 내부를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석담은 경치가 좋기때문에 근로자들이 많이 올수 있다고 하시면서 근로자들에게 석담에 깃든 력사와 봉건통치배들이 태평가나 부르면서 인민들을 억압착취하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윽하여 서원주변에 있는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와 소나무들을 보시고 이 나무들도 잘 관리하며 나무가 적은데는 여러가지 나무를 더 심어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석담구곡의 전경을 바라보시며 인민들을 위하여 복무하게 될 또 하나의 귀중한 재부를 찾으신듯, 금시 휴양소가 자리잡은 석담구곡에서 인민들의 행복에 겨운 목소리를 들으시는듯 일군들에게 이것은 다 인민의 재산이며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이라고 하시였다.
이렇듯 경치좋은 곳을 찾으실 때마다 먼저 인민들이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낼수 있는 휴양소부터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애민헌신의 사랑에 의하여 석담구곡에는 원래 있던 료양소대신 인민들을 위한 사랑의 휴양소가 자리잡게 될 구상이 펼쳐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드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 이곳을 찾으시여 석담구곡을 인민들을 위한 휴양지로,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새겨주는 교양장소로 더 잘 꾸리기 위한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주체49(1960)년 9월 20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석담구곡의 여러 골짜기들과 력사유적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이곳을 자기의 특색이 살아나는 휴양지로 훌륭히 꾸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석담구곡은 그 자연풍치도 아름답지만 력사유적들이 적지 않고 거기에 깃든 사연 또한 교양적이여서 유적들을 잘 발굴정리하여 리용하면 휴양소로써의 품격과 교양장소로서의 특색을 더 잘 살릴수 있는 곳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석담구곡이 유명해지게 된 사연을 리률곡과 결부하여 가르쳐주시면서 우리 나라 력사를 보면 리률곡과 같이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외적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무관들과 명인들이 적지 않다고, 우리가 이러한 력사적인 사실자료들을 잘 정리하여 후대들에게 알려주면 그들에게 민족적자부심과 애국심을 키워주는데서도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련못을 돌아보실 때에는 리률곡이 리순신과 함께 거북선의 시초인 병선을 만들기 위해 그 모형을 띄워놓고 연구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는데 앞으로 련못을 잘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여기에 깃든 전설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청계당에 이르시여서는 석담구곡에 있는 문화유적들을 전반적으로 료해하여보고 력사적사실에 맞게 잘 정리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유적 하나하나에서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헤아려보시였으며 그를 통한 교양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석담구곡을 다 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료양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휴양소를 꾸리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석담은 경치가 좋은데다가 오랜 문화유적들도 있고 저수지까지 옆에 있으니 휴양지로서 적합한 곳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 가르치심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경치 아름답고 력사유적들이 있는 이곳에 휴양소를 훌륭히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안겨주고싶은 그이의 뜨거운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석담구곡에는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력사유적, 휴양소가 조화롭게 어울려 근로자들의 휴양을 보장하는 석담구곡휴양소가 자리잡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 63(1974)년 11월 이곳을 또다시 찾으시여 앞으로 이 일대에 풍치좋은 나무들과 꽃나무들을 많이 심고 계곡미에 어울리게 개울도 정리하여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명승지를 더 잘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휴양소에서는 수백년 자란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석담구곡의 오랜 력사를 전하는 나무들과 력사유적들에 대한 관리사업을 잘하여 이곳의 풍치를 보다 아름답게 가꾸고있다.
그리고 대추, 잣, 감, 추리, 복숭아, 살구, 앵두나무를 비롯한 과일나무들을 많이 심고 꽃밭들을 잘 가꾸어 휴양소의 아름다운 풍치를 한껏 돋구고있다.
오늘도 석담구곡휴양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을 위한 뜨거운 사랑을 길이 전하며 해마다 4월부터 10월까지 전국각지의 로동자, 사무원들의 여름휴양을,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농업근로자들의 겨울휴양을 보장하고있다.
휴양각들과 문화후생시설들이 현대적으로 꾸려져있어 휴양생들은 노래와 춤, 체육경기, 유희오락경기, 들놀이, 등산, 고적답사, 낚시질, 어죽쑤기, 밤 따기 등을 하면서 유쾌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다.
휴양소에서는 휴양생들의 일과를 다채롭고 흥미있게 조직하는 한편 국가에서 공급하는 식료품과 자체로 생산한 고기, 남새, 산나물을 가지고 휴양생들의 식탁을 푸짐히 해주고있다.
인민을 위한 우리 당의 뜨거운 사랑을 길이 전하며 석담구곡은 오늘도 휴양생들과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넘쳐나는 인민의 명승지로 더욱 아름다워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