줴기밥이 전하는 이야기

 2020.5.26.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시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신 장군님과 같으신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인민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면서 인민들에게 페를 끼치지 않고 또 식사시간도 줄이시기 위하여 줴기밥을 준비해가지고 다니시였다는데 대하여서는 누구나 다 잘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드신 줴기밥을 조선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 인민들의 생활형편이 매우 어려웠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와만 결부시켜 인식하고있다.

그러나 조선의 인민들속에서 줴기밥에 대한 전설이 처음으로 돌아간것은 1970년대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의 북변의 산악지대에 자리잡은 자강도 전천군을 찾으시였을 때부터이다.

당시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천땅을 찾아오신다는것을 알게 된 전천려관의 종업원들은 자기네 려관에 그이를 모실 준비를 서둘렀다. 려관안팎을 털어내고 도배도 다시 했으며 주변도 깨끗이 정리하였다. 군내 급양기관의 료리사들을 초청해다가 특산료리도 준비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전천땅을 찾으신것은 주체62(1973)년 8월 27일이였다. 그이께서는 렬차에서 내리시는 길로 군내에 있는 공장들부터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를 마치시자 전천군의 일군들은 그이를 전천려관에 모시고 점심식사를 대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점심식사는 떠나올 때 가지고온 음식이 있으니 렬차에서 하겠다고 가볍게 밀막으시며 렬차가 있는 역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그이를 뵈온터에 어려움과 긴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군의 일군들은 더이상 청을 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당시 전천군에 지도사업으로 내려와있던 중앙의 한 일군이 군내 인민들이 섭섭해한다고 말씀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난처하신듯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수행일군들이 대신 가서 식사를 하고 자신의 인사도 겸해서 전해달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려관으로 보내시였다.

그이를 몸가까이에서 뵈옵고 자기들의 소박한 정성을 드리자던 소원을 종시 이루지 못한 전천려관 종업원들은 서운한 마음으로 수행일군들에게 산골려관에 그이를 모시고싶어한 자기들의 생각을 말하였다.

려관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디를 가실 때면 특별하게 준비한 식사를 지참하시는줄로 넘겨짚고말았던것이다. 수행일군들이 하는수없이 그 《특별한 식사》란것이 줴기밥에 오이랭국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설마하니 그분께서 그런 음식을…》

려관일군들은 저녁녘에 수행일군들이 렬차에서 가져온 줴기밥을 보고나서야 입을 봉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평민성에 대한 이 실화는 이상하게도 전해지는 과정에 《신비한 줴기밥》, 《특수한 줴기밥》에 대한 이야기로 와전되였다. 아무러면 여느 줴기밥과 같겠는가 하는 반신반의의 심리가 작용하였을것이다.

이것은 결코 무리한것이 아니였다.

1970년대를 놓고본다면 조선은 적들의 대규모전쟁연습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공화국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거창한 창조와 변혁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조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금제도를 페지하고 전반적11년제의무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발전도상나라들과 싸우는 인민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주었다.

그리고 일반사람들의 물질생활수준도 대단히 높았다. 그들은 먹고 입고 쓰고사는 문제에 대한 근심걱정을 전혀 몰랐다. 려행길에 오르면 풍성한 도중식사를 준비하는것이 례상사였고 가는 곳마다 그리고 렬차안에서도 손님들을 위한 높은 수준의 봉사가 진행되였다.

그러니 조선로동당의 중요한 직책에서 사업하시면서 온 나라 사업전반을 지도하시고 온 나라 인민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 흠모하여마지 않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 일반사람들도 생각지 않는 까나리와 절인 오이를 넣은 줴기밥을 드신다는 말을 어떻게 진실로 믿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의 줴기밥에 대한 전설은 그이께서 인민을 위한 불멸의 헌신의 한토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