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박사 부교수 김희성
2025.5.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은 수령님께서 력사에 류례없는 난관과 시련을 헤치며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승리만을 떨쳐오게 한 근본비결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근 80년 력사에는 평범한 기관사가 철도상으로 된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철도운수부문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에게 베풀어주신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조선에서 해방후 철도로동계급의 첫 애국운동으로 벌어진 김회일운동의 발기자인 김회일이다.
김회일동지로 말하면 해방직후에 정주기관구 구장으로 사업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기관구종업원들을 불러일으켜 일제가 파괴한 기관차들을 살려내고 자체로 탄을 캐내여 우리 나라의 유연탄으로 기관차를 운행한 로동계급의 첫 애국운동발기자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여 이 운동을 김회일운동으로 불러주시고 온 나라에 이 운동을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김회일동지를 유능한 일군으로 키워주시기 위하여 그에게 철도운수부문의 여러 단위 사업을 맡기시여 철도의 실태를 알고 관리경험을 쌓도록 하시였으며 1949년 10월에는 그에게 교통성 부상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다. 그리고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그를 교통성 해방지구 림시교통관리부 총책임자로 파견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계급출신의 완력있는 일군인 김회일동지가 전후 철도복구의 어려운 과업도 책임적으로 해내리라고 굳게 믿으시였다.
언제인가 김회일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수령님께서는 전쟁기간 철도일군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전시수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고나서 자애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시며 동무는 오늘부터 철도상의 중책에서 일하게 되였다고, 동무는 로동계급출신으로서 높은 희생성과 정력을 다 발휘하여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며 철도운수부문을 빨리 복구발전시키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믿음어린 말씀을 주시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이여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수령님, 저는 부상의 직책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있는데 제가 어떻게 상으로 일할수 있겠습니까.》하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일없다고, 내가 도와줄테니 걱정말고 해보자고,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그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이 있었기에 그는 철도상의 직책에서 아름찬 철도복구사업을 신심있게 내밀었으며 정전후 불과 한주일만에 전국의 중요철도간선들에서 화물수송과 려객수송을 시작하였고 철도운수수단과 시설들을 복구정비하는 사업과 함께 수송조직과 지휘를 개선하여 1953년말까지 전반적지역에서 철도수송을 정상화하여 전후 급속히 늘어나는 철도수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였다. 해주-하성사이 넓은철길건설을 단 75일만에 끝낸 기적도, 이천-세포사이를 비롯하여 새 철길건설에서 이룩된 성과들도 김회일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상으로 사업할 때에 마련된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품이 있었기에 김회일동지는 생을 마치는 마지막순간까지 참된 삶을 누릴수 있었으며 오늘도 평범한 기관사가 철도상이 된 전설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될수 있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