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위인의 손길속에 빛나는 고려성균관

김일성종합대학 교육학부 김수연 ,   2020.10.14.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빛나는 우리 조국에는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유적과 유물들이 참으로 많다.

이 력사유적과 유물들이 오늘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빛을 뿌리게 된것은 숭고한 애족애민의 사상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따사로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한점의 유적유물도 귀중히 여기고 민족의 재보로 빛내여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평생 남기신 감동깊은 사연들가운데는 고려성균관을 천년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워주신 잊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주체81(1992)년 5월 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문화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기 위해 이른아침 개성시를 찾아주시였다.

80고령에 먼길을 달려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일군들의 인사를 받으시고 성균관부터 먼저 가보아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개성시 방직동에 자리잡고있는 성균관은 약 1만m2의 부지를 차지하고있는 력사유적으로서 여기에는 당시 강의실이였던 명륜당과 학생들의 합숙이였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20여채의 건물이 있었다.

성균관은 고려초기에 건설되여 처음에는 고려 11대왕인 문종의 별궁으로 쓰이다가 그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들이던 순천관과 교육기관인 승문관으로 리용되였다. 그러던것이 14세기초 나라의 최고교육기관인 국자감이 여기로 옮겨오면서 그때부터 성균관이라고 불리웠는데 그후 불에 탄것을 17세기초에 다시 세운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을 당시 성균관건물은 1 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고려박물관으로 리용되고있었으며 그 주변은 민속놀이터로 꾸려져있었다.

화려한 단청을 올린 처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성균관의 건물들을 둘러보시며 성균관을 잘 지었다고, 성균관은 국보적가치가 있다고 마디마디 민족적긍지를 한껏 담아 이야기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성균관을 대학으로 리용할수 없겠는가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현대적인 대학들이 수풀처럼 일떠선 오늘날 고색창연한 성균관을 대학으로 리용한다는것이 전혀 뜻밖이여서 동행한 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누구도 선뜻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집이 좁고 옛날식이기때문에 대학으로 리용하기에는 불편할것 같다는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균관을 지금처럼 고려박물관으로 꾸려놓고 우리 나라에 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해외동포들에게 이 건물이 고려시기의 최고교육기관이였다고 설명이나 하여서는 의의가 없다고, 성균관을 대학으로 살려 고려성균관이라고 하고 우리 나라에는 고려시기에 세운 최고교육기관이였던 성균관을 계승한 대학이 있다는것을 실물로 보여주는것이 좋다고 교시하시였다.

어느 력사가, 교육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으로 숭고한 뜻이 담겨진 말씀이였다.

사실 우리 민족은 고려건국초기에 벌써 개경(오늘의 개성)에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들을 세웠으며 992년에는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내오고 여기에 국자학, 대학, 4문학, 률학, 서학, 산학의 6개 학과를 설치하여 교육을 진행하여왔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성균관을 찾아주신 당시까지만 하여도 이러한 천년의 교육력사가 깃들어있는 력사유적이 나라와 민족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한 귀중한 장소로 리용되지 못하고있었다.

세월의 장막속에 파묻혀있던 우리 민족의 유구한 교육력사는 한없이 숭고한 조국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드디여 세상에 진정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균관이란 인재를 키운다는 뜻이라고 그 의미도 해석해주시며 자신의 생각에는 성균관을 대학으로 살려 고려성균관이라고 하고 경공업종합대학으로 만드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성균관건물을 교육기관으로 쓸수 없겠는가 하는것을 두고 생각하여왔는데 현지에 나와보니 결심이 선다고 하시며 성균관을 대학으로 내오는것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개성시의 여러 단위들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고려성균관을 내오는 문제를 두고 여러차례에 걸쳐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효왕릉을 돌아보실 때에도 고려성균관에는 고려시기에 널리 알려진 고려도자기학부, 고려인삼학부, 고려수예학부, 고려식료공학부, 고려방직학부, 경공업경영학부 같은것을 내오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성균관에 내올 학부들까지 몸소 하나하나 지적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천년의 력사와 전통을 가진 고려성균관을 먼 후날에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대학으로 꾸려 후대들에게 넘겨주시기 위해 매일 고려성균관의 개건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걸린 문제들을 몸소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려성균관의 학제와 학생수도 몸소 구체적으로 타산해주시였고 고려성균관교사를 새로 건설하자면 일정한 기일이 걸리는 조건을 고려하여 당분간 개성경공업단과대학건물을 그대로 쓰면서 인차 새로 잘 지을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새 교사는 성균관옆에다 잘 어울리게 2~3층으로 민족적인 건축형식을 살려 건설하되 먼저 설계형성안부터 잘 만들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성균관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대하여 몸소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고 걸린 문제들을 직접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해 가을 새로 복구된 고려성균관은 천년력사를 자랑하며 성대한 명명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학에 자신께서 친히 쓰신 현판까지 내려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성균관에 새 교사를 짓는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력사주의적원칙에서 훌륭히 건설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성균관명명식이 있은 때로부터 얼마후인 9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 건설할 고려성균관의 설계형성안을 보아주시였다.

고려성균관설계형성안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보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물들의 형식이 다 좋기는 한데 대학교사가 지내 높고 요란하기때문에 본래 성균관건물이 눌리워 볼품이 없게 되여 틀렸다고 하시며 본래 성균관은 비록 옛날 건물이기는 하지만 천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것만큼 내세우고 자랑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고려성균관을 새로 건설하는것도 기본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고려성균관을 자랑하기 위해서라고 하시며 새로 건설하는 교사의 높이를 본래 성균관과 어울리게 건설하는것이 좋겠다고, 고려성균관을 설계형성안 《성균관 4》를 살려서 건설하되 건물의 높이는 본래 성균관보다 낮추지 말고 약간 높이 하여 성균관도 살아나게 하고 새로 건설하는 대학청사도 살아나게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고려성균관을 건설할 때 본교사와 련결시킬데 대한 문제, 기숙사건설에서 나서는 문제, 교원들의 살림집건설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려성균관에 인삼학부를 새로 내오는 조건에서 실습포전이 있어야 할것이라고 하시며 성균관가까이에 있는 인삼포전을 실습포전으로 쓰도록 크나큰 배려까지 돌려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관심과 배려속에 고려성균관은 모든 교육조건을 훌륭히 갖춘 경공업대학으로, 우리 민족의 자랑인 천년의 력사를 가진 성균관을 계승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력사를 가진 대학으로 그 이름 세상에 빛나게 되였다.

정녕 우리의 민족사는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손길아래 반만년의 유구함을 온 세상에 자랑하게 되였으며 수령님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계시여 자주의 강국으로 존엄떨치는 위대한 김정은시대의 새 력사를 기록하면서 대를 이어 더욱 찬란히 빛을 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