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엄혁민
2019.12.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국제주의에 얼마나 충실하시였는가 하는것은 해방직후에 중국혁명을 도와준 자료들만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9권 407페지)
군대에 있어서 군복과 신발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 동북해방전쟁시기 중국공산당군대에서는 군복과 신발문제가 크게 걱정거리로 된적이 있었다.
이때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풀어주시였다.
주체35(1946)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길동분구 사령부에서 군복문제때문에 조국에 온 분구공급부 부부장을 접견하시였다.
공급부 부부장은 길림분구의 사령원과 정치주임이 련명으로 수표한 청원편지를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고나서 군복천을 해결하려고 우리 나라 여러곳을 다녀보았으나 해결하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보고를 받으시고 동무가 가본 그곳에는 원래 천이 없다, 벌써 나한테 찾아왔을걸 그랬다, 우리도 천이 매우 긴장하지만 싸우는 동무들을 위해 요구대로 보장해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부부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이 너무도 고마워 그이께 거듭 사의를 표하였다.
그 시기 동북의 해방지역에 병기공장과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 기업소들이 있었으나 전시조건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데다 군대입대자는 급격히 늘어나니 먹는 문제와 함께 입는 문제, 신발문제가 심히 걸렸었다.
분구사령부에서는 공급부 부부장에게 자체로 풀어보라고 임무를 주어 우리 나라에 내보내였다.
그래서 부부장은 함경남북도와 강원도 등지를 다녀보았는데 돈을 주고도 천을 살수 없어 하는수없이 분구사령부에 보고하니 분구사령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수 없이 편지를 써서 그를 다시 우리 나라에 보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해당 부문 일군에게 지시를 주시였다.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방직공장이 제대로 돌지 못하여 개인들이 집들에서 베를 짜거나 무명나이를 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 형편이였지만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많은 량의 군복천을 해결하였다.
공급부 부부장은 너무 고마워 위대한 수령님께 다시 인사를 드리고 떠나자고 찾아갔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복천외에 군복 1 000여벌을 더 주시면서 경위대와 군정간부들에게 주라고 하시고는 나라사정이 어려워 더 보내지 못하는것을 못내 안타까와하시였다.
공급부 부부장은 두만강을 건너 분구사령부까지 오면서 줄곧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에 눈굽이 젖어있었다.
그가 군복천과 군복, 의약품을 가지고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분구사령부에서는 공급부 부부장의 귀환보고를 감동속에 청취하였다.
그때를 회상하여 당시 길동군구 정치부주임 당천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돌이켜보면 주석동지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배려를 거듭 받아안은 그 력사의 사연을 울먹이며 전하는 공급부 부부장과 숨을 죽이고 경청하는 우리의 간부들도 조선전역에 기아와 빈궁이 엄습하고 내외반동들이 준동하던 8.15직후의 형언키 어려운 간고한 환경이였지만 조선당의 시종일관한 중국혁명지원정책과 연변방침을 심장으로 감수하여 위인에 대한 뜨거운 경모의 정으로 가슴들을 들먹이였다.
정두환의 사업보고가 끝나자 장내에서는 환성이 빈발하는 가운데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중국인민의 동북과 관내해방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인민이 바친 사심없는 지원은 국제주의적지원의 가장 빛나는 모범으로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맺어주신 조중친선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빛나게 계승되였으며 오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하여 활짝 꽃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