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조선의 현악기 공후

 2025.6.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민족악기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있습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후를 비롯한 여러가지 악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슬기롭고 재능있는 조선민족은 고대부터 벌써 인류문명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이바지하는 민족악기들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러한 민족악기들가운데는 고조선시기에 만들어진 공후도 있다.

고조선사람들이 만든 공후는 조선옛류형사람들이 짐승사냥에 리용하던 활에 그 연원을 두고있었다. 조선옛류형사람들은 활에 화살을 메워 잡아당겼다가 쏠 때 소리가 나는것을 포착하고 활모양의 악기를 만들어냈다.

고조선사람들이 만든 공후에는 소공후, 수공후, 와공후 등이 있었다. 수공후(23줄), 소공후(13줄)의 구조는 활처럼 구부러진 현주(현, 줄을 걸어매는 대)와 횡목(가름대)으로 되여있고 현주와 횡목에 줄을 고정시켰는데 모두가 세운 상태에서 몸에 품고 량손으로 연주하는 현악기들이였다. 그리고 와공후(12줄)는 말그대로 누운 공후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으로서 그 구조가 소공후, 수공후를 눕혀놓은 모양이였다.

고조선에서 공후와 같이 발전된 현악기가 나오게 된것은 단군조선시기부터 음악예술을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의 창조적노력의 결과였다.

《풍속통》, 《악서》를 비롯한 중국의 옛 문헌들에도 구불고 긴 몸체를 가진 공후를 중국의 왕들까지도 즐겨탔다고 기록되여있는것을 보아도 고조선사람들이 만든 공후가 매우 훌륭한 악기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고조선에서 매우 훌륭한 현악기인 공후가 만들어진것으로 하여 《공후인》과 같은 이름난 고대가요들이 창작될수 있었다. 《공후인》의 가사는 《해동역사》, 《오산설림》, 《열하일기》를 비롯한 민족고전들뿐 아니라 《고금주》, 《고요언》 등 다른 나라의 옛 책들에도 실려있다.

이렇듯 현악기 공후는 고대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악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