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재정금융학부 김응정
2026.4.2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에서는 사상사업이 언제나 첫째가는 중대사로 나서고 혁명의 개척기에 벌써 사상사업의 위대한 전통이 마련되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발간된 혁명적출판물들인 《3.1월간》, 《서광》, 《종소리》, 《철혈》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조선혁명의 개척기에 《새날》신문이 창간된 나날들에 대하여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조선이 독립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시고 일찌기 일제를 반대하는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적출판물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새날》신문의 창간을 지도하시면서 혁명적출판물의 력사적전통을 마련하시였다.
당시 간악한 적들의 탄압으로 하여 종이와 등사기를 비롯한 신문발간에 필요한 출판기자재들을 제대로 마련할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때 자신께서는 생각다못해 손으로 써서 신문을 내기로 마음먹고 이 사업에 새날소년동맹 열성자들과 백산청년동맹의 핵심들을 동원시키였다고, 100부를 쓰는데 한주일이상의 시간이 걸리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26년 10월 17일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그후 새날소년동맹을 비롯하여 백산청년동맹, 반일부녀회 등 수많은 혁명조직들을 내오시고 넓은 지역으로 혁명조직들을 확대시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령도하시면서 혁명조직의 주위에 광범한 청년들과 군중들이 묶어세워지는데 맞게 그들에게 사상적인 량식을 줄수 있는 신문이 있어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을 지새우시면서 몸소 원고를 집필하시는 한편 적들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종이를 구하시고 신문을 만드시면서 그 이름을 《새날》이라고 달도록 하시였다.
새날!
여기에는 간악한 일제의 쇠사슬속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조국땅에 해방의 새 아침을 안아오시려는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리상과 철의 의지가 세차게 맥박치고있었다.
그이의 고귀한 뜻이 그대로 글줄이 되고 신문이 되여 드디여 1928년 1월 15일 《새날》이라는 뜻깊은 이름을 단 신문의 창간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새날》신문은 작고도 소박한 신문이였지만 사람들에게 사상적량식을 주고 승리의 신심과 락관을 안겨주는 혁명적출판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