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학습당이 수도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 사연

 2021.9.20.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리익보다 더 신성한것은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민이 하늘처럼 떠받들리우고있다.

전민학습의 대전당으로, 대기념비적건축물로 건설된 인민대학습당이 위대한 우리 국가의 수도 평양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데는 가슴뜨거운 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수십년전 10월 어느날 모란봉에 오르시여 평양시의 전경을 부감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남산재를 가리키시며 저기에 무슨 건물을 앉혔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일군들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너무도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선듯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의 나날에 벌써 평양시복구건설계획도에 남산재를 수도의 중심부로 정하시고 이곳을 축으로 하여 도시를 형성하도록 하시였으며 전후복구건설시기에도 또 그후에도 주변에 만년대계의 건축물들을 수많이 일떠세우시면서도 이 터전만은 굳이 남겨두시였던것과 관련되여있었다.

어느해인가 한 설계가가 남산재를 그냥 비워두는것이 아쉽게 생각되여 그곳에 정부청사를 앉힐 안을 만들어 어버이수령님께 올린 일이 있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설계안을 밀어놓으시며 무엇때문에 그 좋은곳에 정부청사를 앉히겠는가, 도시중심에는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많이 쓰는 공공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깨우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아직은 그 자리를 비워두고 더 생각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설계가는 그제서야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훌륭한 자리를 인민을 위하여 가장 쓸모있게 리용하시려고 아끼고계신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후 그 설계가도 다른 설계일군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명심하고 남산재에 앉힐 건물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구상해보았으나 아무도 신통한 안을 내놓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남산재는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남아있게 되였다.

그러던 주체62(1973)년 12월 13일 일군들과 함께 몸소 남산재에 오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이곳을 정리할 때가 되였다고 하시면서 평양에는 이미 인민문화궁전도 있고 학생소년궁전도 있으니 여기에다는 도서관을 하나 크게 짓자, 여기 남산재에 도서관을 앉히면 인민들이 좋아할것이라고, 또 지나가던 사람들도 물어보고 청사라고 하면 관료주의자들이라고 욕을 하겠지만 인민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짓는 도서관이라고 하면 모두 좋아할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수도의 중심에 인민대학습당이 솟아나게 되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는 광장에 정무원청사를 하나 앉혀놓았는데 그것도 중앙에 앉힌것이 아니라고, 중앙에는 인민을 위한 인민대학습당을 앉히고 그옆에 정무원청사를 앉혔는데 그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심부름을 많이 하라고 앉힌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수도의 중심에 높이 솟은 인민을 위한 건물.

수도의 중심은 곧 나라의 중심이기때문에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서나 수도의 중심에는 국가기관을 앉히는것이 관례로 되여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만은 수도의 중심에 국가기관이 아닌 인민을 위한 건물, 인민대학습당이 자리잡고있다. 여기에는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이 응축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