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벌에 생겨난 사랑의 저수지

 2020.11.13.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인민은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가슴불태우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인민들을 찾으신 현지지도의 한평생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인민대중에 의거하고 대중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우리 당의 혁명적령도예술의 빛나는 귀감입니다.》 (김정일전집》 제3권 399페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인민군부대들과 인민경제 여러 부문을 비롯하여 조국땅 방방곡곡을 찾으신 현지지도단위수는 2만 600여개이고 그 날자수는 8 650여일에 달하며 그 로정의 총연장길이는 무려 57만 8 000여㎞(144만 5 000여리)나 된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대부분 농촌의 포전길에서 흘러갔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모를 내본다고 말씀하시며 바지를 걷어올리시고 논판에 들어서시여 한포기 또 한포기 정성껏 모를 내시던 미림벌의 그 봄날로부터 전화의 불비속에서 농민들과 함께 씨앗을 묻어나가시던 원화벌의 그 새벽, 전후의 첫 생신날도 농민들과 함께 보내신 중화벌의 그 못잊을 추억을 넘어 청산리와 리현리, 연백벌, 금당벌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포전들에 새기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의 자욱마다에는 오직 하나 우리 인민들을 잘 먹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는 숭고한 일념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지금도 우리 인민은 진눈까비 내리던 겨울밤 몸소 홰불을 드시고 논농사에 필요한 물원천을 찾아 장수원의 산골짜기며 비탈길을 톺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모습을 잊지 못하고있다.

이 이야기도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려고 바치신 그 가슴뜨거운 사연들중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미루벌은 물이 없어 메마르기로 이름난 곳이였다.

미루벌을 끼고있는 신계군과 곡산군, 수안군에서도 평지대 논밭에 물을 대주는데는 별로 걸리는것이 없지만 미루벌에 물을 대주는것은 거의나 불가능한 일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루벌이 아무리 메마른 고장이라고 하여도 이곳의 물문제를 기어이 풀려고 생각하시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전후에 농업기술자들을 이곳에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리도 당부하여 보내셨지만 기술자들은 미루벌에 갔다가 아예 도리질을 하고 돌아섰다.

그것도 어지간해야지 땅이 돌덩이같은 진흙땅이여서 도저히 농사를 지을수 없다는것이 그들의 일치한 견해이고 립장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가 뭐라든 미루벌같은데서 농사를 짓지 못한다면 어떤 땅에서 농사를 짓겠는가, 우리 나라에서 그런 땅을 쓰지 않으면 어떤 땅을 쓰겠는가고 생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와 같이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조건에서는 미루벌에서도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어느날 저녁식사를 하신 후 현지에 몸소 나가시려고 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날이 저물었는데 다음날 떠나는것이 좋겠다고 안타까이 만류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용차를 타시고 미루벌로 떠나시였다.

물원천을 찾으시여 깊은 밤 장수원의 그 이름없는 산야에 발자국을 찍으시던 그때처럼 우리 수령님께서 이번에도 또 미루벌을 향하여 밤길을 달리시였다.

깊은 밤에야 신계군에 도착하신 수령님께서는 미루벌의 물문제로 마음쓰시며 한밤을 지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아침 여느때보다 일찌기 식사를 마치시고 몸소 미루벌에 나가시였다. 들려오던 말처럼 진짜 땅이 새빨갛고 굳기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도대체 거기에 벼모를 꽂아서 농사를 지을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결심을 단념할수 없으시였다. 어떻게 하나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자면 한뙈기의 논이라도 더 풀어서 벼를 심어야 했던것이다. 인민을 위하는 일에서는 돌우에도 꽃을 피우시는 우리 수령님이시였기에 이것저것 나무람하지 않으시였다.

미루벌을 돌아보고 오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생각은 깊으시였다.

돌덩이같은 굳은 진흙땅을 풀자면 분명히 많은 량의 물이 필요하겠는데 그것을 해결하려면 방대한 량의 물길공사를 하여 양수장을 건설하여야 하였다. 그러니 초보적으로 타산하여도 많은 건설력량이 움직이여야 하였다. 그런데 만일 이 주변에 주둔하고있는 인민군군부대의 지원을 받으면 비교적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에서 즉시에 인민군대 부대장을 부르시였다. 부대장은 모든것을 툭 터놓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깊이 감동되여 자기들이 맡아서 꼭 잘 해놓겠으니 수령님께서 이 일을 두고 근심하지 마시라고 거듭거듭 말씀드리였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에 양수장을 건설하고 물을 퍼올려 쓰게 되였다. 그런데 이 양수장에서 퍼올린 물을 가지고서는 집짐승을 기르는데나 썼지 농사에는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수지를 하나 더 건설하기로 결심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또다시 떨쳐나섰다.

이렇게 되여 미루벌에 신곡저수지를 비롯한 여러개의 사랑의 저수지들이 생겨나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는 말그대로 인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의 수만리길이였다.

전체 조선인민은 한평생 오로지 인민의 행복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의 로고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이 땅우에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