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되고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금속활자를 쓴것은 유럽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썼다고 전하고있는것보다 몇백년이나 앞서고있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1100년전에 성립된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금속활자의 발명, 색과 문양, 모양이 특출하여 세상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고려자기의 생산 등 세계적인 과학문화적성과들로 우리 나라의 명성을 온 세상에 떨치였다.
고려왕궁터인 개성 만월대에서는 주체47(1958)년에 한점의 금속활자가 발견되였고 주체104(2015)년 11월에 또하나의 금속활자가 발굴되였으며 이어 주체105(2016)년 4월에 또다시 단번에 4점의 금속활자들이 발굴되였다. 이로써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가 명실공히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을 보여주는 물적자료들이 더욱 풍부해지게 되였다.
우리 나라가 금속활자의 조국,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은 력사기록자료들과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금속활자인쇄물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력사기록자료들가운데서 금속활자의 사용정형에 대하여 쓴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고려시기의 이름난 문인이였던 리규보(1168-1241년)의 문집인 《동국리상국집》이다.
그에 의하면 1123-1146년경에 고려의 관리였던 최윤의 등이 쓴 책인 《상정례문》을 1234년부터 1241년 어간에 고려의 림시수도였던 강화도에서 《주조한 활자(금속활자)로 28부를 인쇄하였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1239년과 1264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불경책들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인왕반야경》에 대한 자료 등 고려시기 금속활자를 사용한 사실들이 《고려사》를 비롯한 력사책들에 기록되여있다.
이러한 력사기록자료들은 12세기 전반기에 발명된 금속활자가 13세기에 이르러 고려에서 금속활자인쇄업의 전성기를 가져왔다는것을 실증해준다.
우리 나라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것은 프랑스의 빠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여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랜 금속활자인쇄물인 고려의 불경책을 통해서도 확증되였다.
고려에서 출판된 불경책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일명 《직지심경》) 하권의 마지막장에는 《1377년 7월 청주목의 흥덕사에서 주조한 활자로 인쇄하여 돌린다.》라는 글이 씌여져있고 책의 본문에 대한 인쇄공학적분석결과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금속활자인쇄물이라는것이 명백히 인정되였다.
주체61(1972)년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문화기구)의 주최밑에 《국제도서의 해》행사의 일환으로 프랑스의 빠리에서 열린 《책의 력사》종합전람회에 이 책이 전시되였는데 현존하는 금속활자인쇄물로서는 제일 오래전의것으로 평가되였다.
새 세기에 들어와 유네스코는 이 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된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세계적으로 도이췰란드의 구텐베르그가 1450년대에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사용하였다고 인정되였다.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주조기술은 15세기 50년대를 거쳐 60년대에 도이췰란드의 여러 도시들에 빨리 보급되였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도 전파되였다고 한다.
구텐베르그는 어느 한 자산가의 후원으로 1450년경에 인쇄소를 세우고 1451년부터 1455년사이에 여러가지 책들을 발행하였는데 특히 1455년에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체적이 큰 두권의 책으로 된 42행성서를 인쇄하였다.
1972년 당시까지는 구텐베르그의 42행성서가 가장 오랜 금속활자인쇄물로 인정되고있었다.
고려에서의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은 결국 구텐베르그의 성서와 비교하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78년, 《고금상정례》는 200여년 앞선것이며 학계가 인정하는 12세기 전반기를 우리 나라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시기로 보면 근 300여년이 앞선것으로 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고려시기에 인류문화발전에서 획기적사변의 하나로 되는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명하고 사용함으로써 세계출판인쇄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조선민족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