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박길만
2025.4.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직후 문맹퇴치사업을 인민정권기관이 수행하여야 할 당면과업의 하나로 규정하시고 각급 인민위원회가 이 사업을 책임지고 수행하도록 국가적인 문맹퇴치지도체계를 세워주시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문맹을 퇴치하는것은 민주조국건설에서 나서는 중요한 민족적과업이며 인민들의 문명한 생활을 위한 기본조건의 하나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문맹퇴치에 관한 사상을 높이 받들고 해방직후 인민정권기관에서는 1946년 12월 1일부터 1947년 3월 31일까지 4개월간을 기간으로 《동기농촌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할것을 결정하였다. 뒤이어 1947년 12월부터 1949년 3월말까지 《문맹퇴치운동》을 벌려 이 사업을 완전히 끝낼것을 토의결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구체적인 지도와 보살피심에 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문맹퇴치운동은 국가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정연한 기구체계를 통하여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차게 벌어지게 되였다.
1947년 8월 어느날 당시 강원도 평강군 서면 옥동리의 리계산녀성은 자기가 지은 곡식을 정성껏 마련해가지고 평양으로 올라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계산녀성을 친히 만나주시고 그 녀성이 문맹자라는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지식은 광명이고 무식은 암흑이라고, 글을 모르고서는 민주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문맹퇴치의 의의를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으며 문맹을 꼭 퇴치하고 석달후에 자신께 편지를 써보내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공부한 경험을 전국에 소개하고 모든 사람들이 문맹퇴치운동을 더욱 힘있게 전개할것을 호소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집에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여 석달만에 자기손으로 써올린 리계산녀성의 편지를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신문에 리계산녀성의 문맹퇴치경험을 소개선전하며 전국적으로 《리계산운동》을 힘있게 벌리도록 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48년 1월 13일 당시의 평안남도 개천군 조양면 동림리 양참당세포총회를 지도하시는 과정에 당원들이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것을 보시고 우리 말과 글을 배워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일깨워주시면서 공부를 잘하여 3월말까지 모두 자신께 편지를 하라고 뜨겁게 당부하시였다.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서 막돌처럼 버림받아온 우리 인민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보살피심속에서 조선에서의 문맹퇴치운동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
그리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8년 7월까지 문맹자의 98%가 문맹을 퇴치하였으며 1949년 3월까지는 문맹을 완전히 퇴치하는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맹퇴치의 성과를 공고발전시키기 위하여 1949년 3월에 출판물들과 국가공문서들에서 한자사용을 완전히 페지하는 혁명적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해방직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문맹퇴치가 짧은 시일안에 빛나게 실현됨으로써 조선인민은 새 조국건설의 당당한 주인으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면서 문명한 문화생활을 누릴수 있게 되였다.
문맹자가 없는 나라!
이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속에서 조선인민은 한평생 인민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령도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