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이다.
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하여놓은 문화적재부들이 많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문화적재부들가운데는 조롱박형단지도 있다.
조롱박형단지는 B.C. 30세기초부터 B.C. 2000년기 말엽까지 고대 조선사람들이 만들어 쓴 질그릇으로서 비파형단검과 함께 우리 민족의 첫 고대국가였던 고조선의 전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의 하나이다.
조롱박형단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에서 앞선 청동기시대(B.C. 4000년기후반기)부터 보급된 팽이그릇에 연원을 두고 발생한 질그릇이다.
팽이그릇은 아구리를 두겹으로 겹싸넘기고 겹싼부분에는 사선으로 무늬를 새겨 장식하였으며 밑창에는 직경 3~5㎝정도 되는 돼지주둥이모양의 작은 굽이 달린 그릇이다. 팽이그릇은 흔히 바탕흙에 모래와 활석, 운모를 섞어 만들었으며 그릇겉면색갈은 황갈색, 흑갈색, 적갈색 등 대체로 갈색계통이다.
팽이그릇은 청동기시대에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류역일대와 우리 나라 중서부일대의 유적들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유물이다.
조롱박형단지는 팽이그릇의 변형된 형태로서 그 생김새가 팽이그릇의 목부분이 우로 올라가면서 약간 넓어져 마치 조롱박의 웃부분을 잘라놓은것과 비슷하기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롱박은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넌출성작물이며 오래전부터 사람들에 의하여 재배되여왔다. 줄기는 길게 뻗고 줄기마디는 짧으며 병배모양의 열매들이 달리는데 열매의 크기는 대체로 길이 15~20㎝, 직경 8~12㎝정도 되며 열매자체를 조롱박이라고도 한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조롱박을 가공하여 물이나 술을 넣는 용기로 리용하여왔다.
조롱박형단지는 바로 오래전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 리용되여 온 조롱박의 우아래를 잘라낸것과 같은 생김새이다.
조롱박형단지는 대부분이 감탕흙과 같은 보드라운 흙을 바탕흙으로 썼고 겉면색갈은 흑회색을 띠고있으며 크기는 대체로 자름자름하다. 그리고 그릇겉면이 잘 닦아져 매끈하고 몸체의 웃부분에 묶움식 줄띠무늬가 새겨져있는것이 특징이다.
조롱박형단지는 시기적으로 오래동안 쓰이고 겉면장식에서 얼마간 차이가 있기때문에 1류형, 2류형,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로 구분되며 매 류형에서도 생김새와 겉면장식, 손잡이 등에서 서로 다른것들이 있으므로 다시 여러가지 형식으로 구분한다.
1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조롱박의 우아래를 잘라버린 생김새의 몸체에 여러개의 줄띠무늬장식과 손잡이가 있거나 없는 단지인데 평안북도 의주군 미송리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였기때문에 미송리형단지라고도 한다.
1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에서 팽이그릇과 함께 고조선의 첫시기부터 B.C. 3000년기 중엽까지 쓰이였다.
1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고조선전기문화 1기의 유적들인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남경유적 3호, 5호, 10호, 11호집자리들과 표대유적 11호집자리, 사동구역 금탄리유적,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유적 14호집자리 등 여러 유적들에서 발견되였다.
1류형조롱박형단지는 대체로 고대조선사람들이 퍼져 살던 료하류역과 송화강류역의 길림, 장춘지방으로부터 조선반도 남단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알려졌는데 그가운데서도 가장 이른 형식의 1류형 조롱박형단지는 평양지방에서만 보인다.
2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몸체의 생김새와 바탕흙, 색갈이 1류형의 조롱박형단지와 비슷하지만 몸체의 중간부분에 두돌기의 묶움식 줄띠를 가로 돌린 다음 그사이에 지그자그모양으로 사선을 그어서 바로 또는 거꾸로 선 3각형 무늬를 새긴 단지이다. 이런 류형의 단지가 평안남도 개천시 묵방리에서 알려졌다고 하여 묵방리형단지라고도 한다.
2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1류형의 조롱박형단지에 뒤이어 고조선전기문화 2기인 B.C. 3000년기말부터 B.C. 2000년기 초엽까지 쓰이였다.
2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에서 전통적인 목긴팽이그릇과 함께 류행되였다.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몸체의 중간부분에 두돌기의 묶움식 줄띠무늬를 가로 돌린 다음 그 사이에 바로 또는 거꾸로 선 3각형무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련속 이루어지게 새긴 다음 3각형만을 윤기나게 잘 닦아 더 돋보이게 한 단지이다.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가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였기때문에 남양리형단지라고도 한다.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에서 전형적인것은 남양리유적 25호집자리에서 발견되였다. 이 단지는 1류형이나 2류형의 조롱박형단지들보다 목이 우로 올라가면서 밖으로 보다 밋밋하게 벌어졌고 목아래의 몸체부분은 긴 타원형의 평면테두리를 이루었으며 몸체에 꼭지손잡이가 붙어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에서는 가장 이른 형식의 1류형 조롱박형단지로부터 2류형과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들이 모두 알려졌다.
지난 시기에는 조롱박형단지의 분포범위를 청천강이북으로부터 료하류역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고 조롱박형단지자체도 중국의 료동지방에서 먼저 생겨나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였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료하류역과 송화강류역의 길림, 장춘지방, 남부조선일대 등 다른 지역들에서 발견되는 조롱박형단지들에서는 평양지방에서 발견된것과 같은 가장 이른 형식의 1류형 조롱박형단지와 2류형, 3류형의 조롱박형단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조롱박형단지의 발생지, 보급지가 다름아닌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이며 조롱박형단지에 의하여 특징지어지는 고조선문화의 발원지, 중심지도 다름아닌 대동강류역일대라는것을 실증해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류역일대에서 팽이그릇갖춤새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고 오랜 기간 쓰인 조롱박형단지는 고조선의 력사와 문화발전의 독자성과 유구성, 우수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