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교수 최성우
2025.2.14.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전사들을 생사를 같이하는 귀중한 동지로 굳게 믿고 육친의 뜨거운 사랑과 정을 기울여 불굴의 혁명가, 혁명전우로 키우시였으며 그들에게 죽어서도 영생하는 고귀한 삶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우리 공화국력사의 갈피에는 자기의 힘으로는 한치도 움직일수 없는 하반신완전마비의 불구의 몸이였지만 43년동안 침상에 누워서도 700여편의 시를 창작하였고 시집만 하여도 3권이나 남기였으며 조선로동당원으로, 김일성상계관인으로, 로력영웅으로 영광의 절정에서 참된 삶을 빛내인 영예군인시인 김시권(1929-1993)동지도 있다.
해방후 해주교원대학 생물화학부(당시)에서 공부하던 김시권동지는 졸업을 며칠 앞두고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사랑하는 조국을 보위하기 위해 용약 전선으로 탄원하였다. 전선에서 중기소대 소대장으로 용감히 싸우던 그는 그만 적의 흉탄을 맞게 되였다. 적의 흉탄은 그의 가슴을 두곳이나 관통하고 척추까지 부스러뜨렸다. 그를 치료한 야전병원에서는 제대감정서에 《로동능력완전상실, 일생 타인의 방조요함》라는 의학적평가를 내리였다.
현대의학은 그에게 기껏해서 몇달, 기적이 일어난대도 한두해밖에 살지 못할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현대의학이 선고한 한계를 넘어 43년이나 더 삶을 꽃피우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그 43년은 김시권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당과 조국, 삶과 투쟁을 진심으로 열렬히 사랑하고 노래한 보람차고 참된 생의 나날이였다.
김시권동지는 스무살꽃나이에 침상에 매인 몸이 되였어도 절망과 고통, 비애에 빠져 삶을 포기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인한 의지로 붓대를 틀어쥐고 위대한 당과 조국, 투쟁과 삶의 아름다움을 격조높이 구가하였다.
사실상 김시권동지가 중상을 입은 그때 벌써 어머니가 준 육체적생명은 끝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현대의학이 선고한 육체적생명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 삶과 투쟁의 기적을 창조하게 된것은 바로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의 육친적인 사랑을 초월한 위대한 사랑으로 혁명전사들의 삶을 빛내이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은혜로운 손길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이 땅우에 수천만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시권동지가 혁명의 꽃을 계속 더 활짝 꽃피워나가도록 이끌어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62년에 김시권동지가 결혼식을 하게 된다는것을 아시고 몸소 사랑의 축복도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그 영예군인의 결혼식을 잘 차려주어 기쁘게 해주자고 하시며 재단사를 보내여 첫날옷을 몸에 꼭 맞게 지어 입혀주시고 잔치상과 옷감들, 이부자리와 가구들을 마련하여 보내시여 새살림을 보란듯이 차려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김시권동지가 육체적고통을 박차고 당과 조국을 격조높이 노래할수 있게 한 원동력이였다.
김시권동지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지극한 사랑은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끝없이 이어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3년 2월 18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을 만나신 자리에서 시집 《또다시 대오에서》를 쓴 김시권동무를 입당시켜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잘 싸웠지만 전후 침상에 누워서 더 많은 일을 하였다고, 그가 쓴 시는 당원들과 근로자들 특히 청년들을 사회주의건설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데 크게 기여하고있다고, 그는 당원이 될 자격이 있으니 정당원으로 받아주도록 하시였다.
김시권동지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1988년에 김시권동지를 영예의 김일성상계관인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시권동지의 생일 60돐이 되는 1989년에는 일찌기 전신불구의 몸이 된 그의 침상을 30여년간 지켜온 부인을 그의 생애에서 떼놓고 생각할수 없다고 하시며 인생의 기쁨도 시련도 남다른 정으로 함께 걸어온 그들에게 60돐 생일을 같이 맞도록 두상의 생일상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90년 12월에 진행된 전국영예군인예술소조종합공연에 그들부부를 같이 참가시켜 꿈결에도 그리며 뵈옵고싶던 위대한 수령님앞에 내세워주시고 땅을 짚고 순간도 일어날수 없는 김시권동지의 몸상태를 헤아려 특별히 높은 의자를 만들어주어 그가 전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위대한 수령님과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도록 뜨거운 은정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하기에 김시권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영광의 무대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리높이 웨쳤다.
당이여
그대는 나의 넋
그대는 나의 심장
그대 품에서 내 생명 새롭게 태여났거니
그대를 떨어져서 내 순간도 살수 없노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 탄생 80돐을 맞는 1992년에 김시권동지에게 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그를 우리 당의 보배라고, 우리 당에 충직한 전사라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조선기록영화 《빛나는 삶의 품》에 그와 그의 안해의 생활을 수록하여 우리 당의 력사에 길이 남도록 하는 크나큰 은정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김시권동지의 한생을 그토록 빛내여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푸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은 김시권동지의 한생을 영광의 절정에서 빛내여주고 그에게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안겨준 위대한 어머니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