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건축사의 갈피를 더듬어
2. 포화속에서 태여난 평양시복구건설 설계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최원민 ,   2020.11.20.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이 이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도시로 건설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도건설의 원대한 구상을 펼치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결과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벌써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평양시복구건설의 설계도를 무르익히시였으며 전후에 몸소 평양시복구위원회 위원장이 되시여 수도건설을 진두에서 지휘하시였습니다.》 (김정일전집》 제25권 253~254페지)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간 대통로들을 따라 펼쳐진 승리거리, 창광거리, 창전거리, 영광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려명거리를 비롯한 수십개의 거리들에 즐비하게 일떠선 현대적인 고층, 초고층건물들, 날을듯 번쩍 쳐들린 합각지붕을 떠이고 시내의 도처에 웅장하게 자리잡은 인민대학습당과 대극장, 인민문화궁전을 비롯한 조선식건축물들, 대성산과 만경대, 릉라도와 모란봉 등 명소들마다에 꾸려진 인민의 웃음소리 넘쳐나는 유희장들, 능수버들 휘늘어진 대동강과 보통강의 유보도들과 꽃관목 어우러진 공원, 유원지들,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공원속의 도시라고 부러워하는 오늘의 평양의 모습이다.

그러나 행복의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높이 울리는 이 웅장화려한 거리들과 기념비적건축물들, 문화휴식터들이 일떠선 평양의 모습이 이미 70여년전 불비쏟아지는 가렬한 전화의 나날 최고사령부작전탁우에서 그려진것이라는데 대하여 알고있는 사람들은 아마 얼마 안될것이다.

전쟁이 가장 엄혹하던 시기인 주체40(1951)년 1월 12일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승리한 조국의 앞날을 환히 내다보시고 친히 설계일군들을 최고사령부로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잘해놓아야 전쟁이 끝나면 인차 복구건설사업에 착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도시건설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근본원칙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주체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근로자들의 생활에 편리하고 현대적문명생활에 적합하며 조선사람들의 생활감정에 맞게 건설하는것이라고 하시며 작전도우에 화살표를 그으시던 붉은색연필로 손수 평양시의 륜곽을 그리시고 광장, 도로망, 주요시설들의 위치들을 하나하나 그려넣으시면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으로 건설되여 불합리한 점이 많았던 평양시를 단순히 원상대로 복구할것이 아니라 식민지통치의 후과로 생긴 락후성과 기형성을 퇴치하고 광범한 근로인민을 위한 문화시설과 편의봉사시설을 충분히 갖춘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건설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시를 현대적인 도시로 복구건설하기 위해서는 도시중심부를 바로 정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위치도 몸소 정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도로망을 잘 형성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모란봉에서 대동강을 따라 평행으로 새로 대통로를 뽑을것을 예견하고 동평양에 있는 비행장을 시외로 옮기고 거기에 현대적인 거리를 앉히며 대동강에는 다리를 몇군데 더 놓을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그리고 살림집을 많이 건설하되 주요도로주변과 보통강, 대동강기슭에 현대적인 고층건물들을 많이 건설하고 근로자들의 생활에 편리하도록 문화시설과 편의봉사시설들을 주택구역들에 고르롭게 배치할데 대하여서도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장, 기업소는 근로자들의 건강에 해를 주지 않도록 대동강과 보통강하류에 배치하며 유원지와 공원을 전망성있게 건설할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대동강기슭에 유보도를 만들고 록지를 잘 조성하며 보통벌 토성랑일대를 유원지로 만들것과 시안에 있는 대성산, 모란봉, 만수대, 남산재, 해방산, 창광산과 같은 아름다운 산과 언덕들을 모두 공원으로 꾸려 도시의 어디에나 유원지와 공원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평양시건설의 웅대한 구상과 휘황한 전망을 담은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교시는 복구건설계획을 작성하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그자체가 그대로 완성된 총계획도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구상과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주체40(1951)년 5월 드디여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설계초안이 작성되였으며 이 초안은 전쟁이 끝난지 3일째만인 주체42(1953)년 7월 30일 내각결정 《평양시복구재건에 관하여》로 채택되였다.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가렬한 전쟁시기에 벌써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을 작성하도록 해주시고 전후에는 몸소 평양시복구위원회 위원장이 되시여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조직지도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100년이 걸려도 일어설수 없다고 하던 평양은 짧은 기간에 전쟁의 흔적을 가시고 웅장화려하게 솟아났으며 오늘은 주체조국의 수도로, 근로인민대중이 행복을 누리는 현대적인 사회주의도시로, 공해를 모르는 아름다운 공원속의 도시로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