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골농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헌신

 2021.4.12.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주체43(1954)년 9월 18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성군에 대한 전반적지도에 앞서서 약수골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상리상점을 찾으시여 이곳 주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였다. 상점책임자로부터 농민들의 생활은 그다지 나아지지 못했지만 로동자들의 생활은 좀 나아지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림산사업소 로동자의 집을 찾으시였다. 그 집의 살림살이형편은 방안에 자그마한 궤짝이 하나 있고 그우에 낡은 이불 두채가 얹혀있었으며 식량을 공급받아 흰쌀밥을 먹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고장에서 제일 잘산다고 하는 집이 이러니 다른 집들은 얼마나 더 곤난하겠는가고 하시면서 오래도록 마당을 거니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골농민들의 생활을 더 깊이 알아보시기 위하여 중리마을 한 농민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쌀이 없어 맨 강냉이만 삶아먹는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였다.

그후에도 농민들의 생활을 료해하시기 위하여 김매는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시였으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점심보자기를 풀어보기도 하시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약수골에서 오래 살아온 늙은이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밤이 깊도록 마을의 형편과 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뿐만아니라 이른새벽에 친히 간암인민학교(당시)에 찾아가시여 교원들의 생활형편, 학생들의 옷과 신발, 학용품준비상태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료해하시였다.

주체44(1955)년 8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약수리일군들을 부르시여 리내에 모두 몇집이 살며 인구는 몇명이나 되는가, 땅은 얼마나 되며 집짐승은 어떤것들을 몇마리씩이나 가지고있는가 하는것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어느날 상점에 들리시였다가 매대에 놓인 산복숭아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고장에 어떤 산과실이 많은가, 그것을 얼마나 딸수 있는가를 알아보시였으며 한 농민의 집에 들리시여서는 마당에 널어놓은 도토리를 보시고 도토리 한말에 얼마씩 하는가, 한해에 얼마나 주을수 있는가를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이 고장에서는 산열매를 따서 팔아도 수입이 대단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로인과 낚시질을 하시면서 낚시터를 자주 옮기시며 길 아닌 숲속을 헤치시고 주변의 산에 오르시여 산새를 살피기도 하시고 다시 강에 내려오시여 줄곧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기도 하시였다. 사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문헌을 준비하시면서 날이 샐녘까지 일을 보시고도 낮에는 평안북도내 공장, 기업소, 농촌, 학교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그리고 짬시간에는 약수리골짜기를 돌아보시면서 농민들의 살림살이를 의논해주시느라고 한시도 편히 쉬지 않으시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후에는 또 산짐승잡이와 약초캐기를 오래해온 한 늙은이와 함께 이른새벽에 길을 떠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험준한 산발과 깊은 골짜기를 일일이 톺으시며 머루, 다래덩굴도 만져보시고 싸리밭속에 한참씩 멈추어서시여 머루따는 아이들이나 도토리를 줏는 아주머니들을 만나시면 얼마나 땄는가, 몇시쯤부터 주었는가 물으시고 머루는 어느 골짜기에 많으니 그쪽으로 가보라, 도토리는 어느 바위 웃쪽에 가면 하루에 10가마니도 주을수 있겠다고 일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산골농민들의 수입을 늘일수 있는 방도를 몸소 탐구하신 후 리일군들을 다시 찾아주시였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뜯어먹고 바다를 낀 곳에서는 바다를 뜯어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산골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면 산을 잘 리용하여 축산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산을 리용하여 부업을 잘하라고 하시면서 산열매와 산나물을 많이 뜯고 땔나무도 많이 하며 싸리를 베여서 광주리와 다래기, 의자도 겯고 좋은 나무를 골라서 망치자루, 도끼자루, 곡괭이자루 등을 만들며 물고기도 잡고 과일나무도 심고 누에치기도 많이 하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마을 농민들이 짐승새끼 하나 살 밑천이 없다는것을 헤아리시고 많은 종자염소를 보내주시였고 산간지대 농민들의 현물세와 대여곡의 반환을 면제시키며 빈농민들에게 천과 솜, 법랑그릇 등을 눅은 값으로 팔아주는 국가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주체46(1957)년에 또다시 약수리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사이 농민들의 생활이 퍼그나 개선되였다고 매우 기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농업협동조합이 거의 완성된 조건에서 산을 전면적으로, 종합적으로 리용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였다.

약수골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투쟁목표를 향하여 나아갔다. 조합의 기본력량은 농산작업에 돌리면서 한쪽으로는 벌방지대에 사람들을 띄워 송아지들을 사다가 골짜기에 몰아넣었으며 공동축산과 개인집들에서의 개인축산도 함께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이듬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약수골을 다시 찾아주시였을 때에는 먹는 문제뿐아니라 입는 문제도 기본적으로 다 풀리게 되였다. 골짜기의 오막살이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좋은 천으로 옷을 해입고 고무신을 신고다니게 되였다. 집집마다 이불은 다 장만해놓았고 어떤 집들은 값비싼 가장집물들을 갖추어놓게 되였다.

주체47(1958)년 여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약수골을 찾으시여 각 조합의 관리일군들을 만나시여 산골농민들의 생활향상에서 얻은 성과와 경험, 교훈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농민들의 집에 찾아가시여 생활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향상되였는가 하는것을 세세히 알아보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이 있어 약수골농민들의 생활이 몇년어간에 벌방지대 농민들 부럽지 않게 향상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