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깊은 두만강

 2021.11.2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두만강은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력사가 깃들어있는 뜻깊은 강이며 우리 어머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부모님들을 따라 망국노의 피눈물을 뿌리며 건느신 강입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23권 89페지)

주체90(2001)년 7월말 어느날 새벽녘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로씨야행 특별렬차는 동해선철길을 따라 북방의 청신한 새벽공기를 헤가르며 두만강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차창가에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는 아름다운 산촌의 풍경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고계시는 사이에 렬차는 두만강철교에 들어섰다.

조종의 산 백두산에서 시원되여 장장 천수백리를 거세차게 흘러내리는 두만강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감회는 말할수 없이 깊어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추억깊은 시선으로 출렁이는 두만강을 바라보시면서 두만강은 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강이라고 뜻깊게 교시하시였다.

두만강의 물결을 거슬러 꿈에도 잊지 못하신 백살구가 주렁진 오산덕언덕이며 김정숙어머님께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설은 이국땅으로 가시던 눈물젖은 그날의 나루터를 그려보시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행한 일군에게 회령에 가본적이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회령에 가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동상도 뵈옵고 고향집도 돌아보았다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아직 회령에 가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조국에 개선하신 후 산에서 함께 싸우던 전우들이 회령에 가보시자고 여러번 말씀드리였으나 그때마다 지금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고향집부터 찾아보겠는가, 후에 시간이 있을 때 가보자고 하시면서 미루시다가 끝내 가보지 못하시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마다 회령에 가보고싶었지만 일감이 너무 많아 시간을 낼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언제인가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지도하러 온성에 갔을 때에도 시간이 없어 회령에 들려보지 못하였는데 그때 회령을 지나면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고, 그때의 일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고 교시하시였다.

사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처럼 그리워하시던 회령을 지척에 두고도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어머님의 고향집부터 찾겠는가고 하시며 렬차를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으로 곧바로 가도록 하시였던것이다. 그리고 손에손에 꽃다발을 안고 구름처럼 하얗게 모여왔던 회령인민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렬차를 따라 장군님을 목메여 부르며 넘어지며, 눈물을 흘리며 달린 길은 얼마였는지 모른다.

그날의 추억을 돌이켜보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옛날에는 두만강을 원한의 강, 피눈물의 강이라고 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어제날의 원한의 강이였던 두만강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을 벌리실 때에는 투쟁의 강, 희망의 강으로 되였고 오늘에 와서는 락원의 강, 행복의 강으로 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오늘 우리는 김일성조선의 영예와 존엄을 안고 로씨야에 대한 방문의 길에 올랐다고, 출렁이는 두만강의 흐름이 로씨야에 대한 우리의 방문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며 축복의 인사를 보내는것 같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한 일군은 장군님께서 하신 두만강의 력사에 대한 교시는 하나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의 미숙한 견해를 긍정해주시면서 두만강은 우리에게 심오한 철학을 안겨주고있다고 교시하시였다. 계속하시여 그것은 아무리 력사가 유구하고 뿌리깊은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는 강이라고 하여도 그 민족이 위대한 수령을 모시는가 모시지 못하는가에 따라 락원의 강, 행복의 강으로 되는가, 아니면 원한의 강, 피눈물의 강으로 되는가 하는것이 결정되기때문이라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난날의 쓰라린 생활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회주의강국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쳐나갈데 대하여 간곡하게 교시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이시야말로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시고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혁명가, 탁월한 령장이시였으며 절세의 애국자이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