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친히 지어주신 이름-《귀국동》

 2025.7.7.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인민들에게 참된 삶과 행복을 안겨주는 진정한 조국입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 마련된 두번째 귀국선이 1959년 12월 일본의 어느한 항을 떠나 청진항으로 향하고있었다.

한 녀성이 귀국하던 도중에 떡돌같은 아들을 낳은 소식이 전해져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향하던 귀국동포들에게 기쁨을 더해주었다.

산모와 아기는 의료일군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고 조국에 도착한 다음에는 평양의 어느한 병원으로 후송되여 치료를 받게 되였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 일본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꿈같은 일이여서 귀국한 동포들은 사회주의조국의 혜택을 받아안은 복동이를 부러움의 눈길로 바래주었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2차로 귀국한 동포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그들에게 항행시간은 얼마나 걸렸는가, 이번에 몇사람이나 왔는가, 앓는 사람은 없었는가를 하나하나 물어주시는 과정에 귀국하는 도중에 한 녀성이 아들을 낳은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그러니 오는 도중에 귀국동포 한사람이 더 늘어난셈이라고, 우리 나라에 운이 텄다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이윽하여 어린애의 이름을 아직 짓지 못했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기서 이름을 짓자고 하시면서 몸소 《귀국동》이라고 지어주시였다.

이렇게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어버이수령님의 사랑넘친 축복을 받으며 은혜로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서 첫 걸음마를 뗀 그는 이름그대로 귀국동, 행복동이가 되여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후 당의 은정속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희망대로 교원이 되였다.

생활의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헤아려 보살펴주는 고마운 손길은 언제나 떠날줄 몰랐으니 고마운 조국은 그가 가정을 이루게 되였을 때에는 번듯한 새 살림집도 안겨주었다.

그에게 베풀어지는 당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마흔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에는 은정어린 생일상과 선물을 보내주시였다.

그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도 지니게 되였다.

우리의 생명이고 생활인 고마운 품, 사회주의조국의 품이 아니였다면 그가 이렇듯 긍지높고 행복한 삶을 누릴수 없었을것이다.

사회주의조국의 고마움을 실체험을 통하여 절감하였기에 그는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웠고 한생을 맡은 초소에서 성실히 일하였다.

고마운 사회주의제도, 은혜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행복만을 받으며 한생을 누려온 그의 생활은 우리에게 우리의 사회주의제도가 얼마나 고마운 품인가를 다시금 깊이 새겨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