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덕이 전하는 사랑의 이야기들(1)
위대한 수령님과 검덕의 첫 영웅광부

 2021.9.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그 품속에서 우리 인민모두는 세상에 부럼없는 값높은 삶을 누리며 자기들의 존엄과 영예를 남김없이 떨쳐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은 만사람을 뜨겁게 안아주는 한량없이 넓은 품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인민을 절대적인 존재로 내세우시고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시였습니다.》 (김정일선집》 증보판 제16권 467페지)

태양과도 같이 따사로운 위대한 어버이의 품속에서 값높은 삶을 받아안은 로동계급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광업부문의 첫 로력영웅으로 내세워주신 검덕의 조두실동무도 있다.

새 조국건설이 힘있게 벌어지던 주체36(1947)년 5.1절기념행사를 성대하게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국의 공장, 기업소 로동자대표들을 이 뜻깊은 행사에 친히 불러주시였다.

이날 오후 전국 각지에서 온 모범로동자들을 부르시여 만나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애어린 로동자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어느 공장에서 왔느냐고 친절히 물으시였다.

검덕광산에서 온 동무라는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동무가 유명한 검덕광산의 조두실동무인가고 하시며 그의 손을 잡아 높이 흔들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혀주시고 나이는 몇이며 집에는 누가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나이는 열아홉살이고 아버지, 형님을 비롯한 온 가족이 광산일을 한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광부일가라고 치하해주시며 언제부터 광산일을 하였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생활이 너무 구차하여 철들기 전부터 수굴막장에서 일해왔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그래서 키는 제대로 크지 못하였고 손만 이렇게 컸구만 하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오소리굴같은 막장에서 해빛도 보지 못하고 시들어오던 자기를 따뜻이 품어주시는 어버이의 육친적인 살뜰한 정을 느낀 그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한채 어깨만 들먹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달래시듯 어깨를 쓰다듬어주시며 이제는 나라도 찾고 주권도 우리 손에 쥐였으니 그 무쇠주먹을 가지고 건국의 터전을 본때있게 다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금 그의 손을 꼭 잡으시고 일제놈들이 도망치면서 파괴한 광산을 하루빨리 복구하며 낡은 작업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작업방법을 창안하여 증산투쟁의 선구자로 되여야 한다고 뜨겁게 당부하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고 의도하시는대로 새 민주조선을 억세게 떠받드는 기둥이 되여 하루하루를 증산성과로 빛내여가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낮이 다될무렵까지 그들과 담화하시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신 다음에야 몸소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들을 따뜻이 바래워주시였다.

로동자대표들을 떠나보내신 뒤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그들을 잊지 않으시였다. 더구나 세상에 태여나 갓 스물에 처음으로 나들이옷을 입고 기차를 타보았다는 검덕광산 그 청년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으시여 그의 사업과 생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새로운 계단식채굴방법을 도입하느라고 애쓰고있을 때에는 검덕으로 내려가는 일군에게 그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되고있는가, 건강이 어떤가 알아보고 오라고 당부도 하시고 갔다온 후에는 그 정형을 자세히 보고받으시고서야 마음을 놓으시였다. 그리고 그가1947년 첫 인민경제계획을 5배로, 1948년 계획은 9배로 넘쳐 수행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그에게 대를 이어 길이 전할 표창장과 사랑의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리고 배운것이 없어 안타까와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그를 직총간부학교(당시)에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주체38(1949)년 11월 어느날 산업부문의 한 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시간에 그를 친히 불러주시고 다정하신 음성으로 그간 잘 있었는가고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곁에 앉히시고 그의 건강도 걱정해주시고 학습정형에 대하여서도 알아보시며 학습하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이악하게 공부를 하라고, 그래야 선구자의 영예를 계속 빛내일수 있다고 따뜻이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곁의 일군들에게 우리는 이 동무의 애국적이며 헌신적인 로력투쟁을 늘 주의깊게 료해하여왔다고 하시면서 당은 이처럼 일잘하는 로동계급을 그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긴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광업부문에서 이 동무의 작업방법을 널리 일반화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 광산들에서는 그가 창안한 새로운 작업방법이 널리 도입되고 일반화되여 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났다.

그후 전쟁이 일어나고 그가 전선지원청년돌격대를 무어 어렵고 힘든 모퉁이를 맡아 제끼며 여러가지 새로운 작업방법을 받아들여 국가기준량의 17배가 넘는 작업능률을 올렸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동무의 락광기록은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것이라고, 영웅감이라고 하시며 그를 영웅으로 평가해주자고 분에 넘치는 치하의 교시를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렇듯 높은 신임과 배려에 의하여 조두실동무는 광업부문에서 처음으로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는 크나큰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지난날 고역의 막바지에서 하루밥벌이로 헤매이던 소년로동자가 새 조선의 영웅이 되고 온 나라가 다 아는 로력혁신자로 될수 있은것은 한없이 고매한 덕망과 령도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믿어주고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시였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몸가까이 부르시고 당은 언제나 검덕의 영웅을 잊지 않고있다고 하시며 그를 검덕광산(당시) 지배인으로, 광천군(당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내세워주시였으며 주실수 있는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돌려주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인민들 한사람한사람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새 조선의 기둥으로, 영웅으로 내세우시고 이끌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 위대한 스승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