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

고목에도 꽃을 피운 위대한 사랑

 2025.4.10.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계절이 바뀌면 시들기마련이고 한때 명성을 떨치던 인생도 세월의 락엽에는 어쩔수없이 묻히게 되는것이 상례라고들 한다.

그러나 대를 이어 위대한 수령, 자애로운 어버이의 품속에 안겨사는 조선인민모두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고귀한 존엄과 행복속에 아름답게 꽃펴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한없이 넓고 은혜로운 품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사랑의 품에 안겨 고목에도 꽃을 피운 사람들중에는 1920년대 당시 유일하게 녀성의 몸으로 총을 잡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나선것으로 하여 《독립군의 꽃》, 《만록총중 일점홍》으로 불리우던 리관린도 있다.

반일투쟁에 매진하던 리관린의 생활과 운명에 어둠이 깃든것은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고 민족주의운동이 쇠퇴몰락의 길에 들어선 때부터였으며 그후 자기를 이끌어줄 옳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탓에 투쟁을 중도반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후 녀성의 몸으로 더는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외진 산골에 몸을 숨기였고 가정에 묻힌 몸이 되고말았다.

1945년 8월 15일 기다리고기다리던 조국해방의 날이 오고 조국해방의 대업을 이룩하신분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따르던 김형직선생님의 아드님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심을 알았을 때 리관린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싶은 열망에 휩싸였으나 독립성전에서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일신만을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 조국행의 열망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은채 머리에 백발을 이게 되였다.

그러나 남모르는 소원과 고뇌를 안고 반세기이상을 이역땅에서 살아온 리관린은 그 기나긴 세월 자기를 그토록 찾고계신분, 위대한 어버이의 품이 있음을 정녕 모르고있었다.

항일전의 그 나날에도 녀투사들의 모습을 보실 때마다 독립군의 녀걸 리관린을 생각하군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새 조국건설을 령도하시느라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리관린을 찾으시였고 언제인가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실 때에는 일부러 리관린의 고향인 삭주에도 들리시여 군의 일군에게 리관린의 행방을 물어보기도 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친혈육마저도 잊고있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한 독립운동자의 애국의 마음이 그리도 소중하시여 리관린을 찾고 또 찾으시였고 그러던중 중국땅에서 그가 살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즉시 그를 조국으로 데려오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죽어서도 조국땅에 묻히고싶어 백발이 되여 단신으로 조국을 찾아온 리관린을 몸소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터놓는 마음속고충을 다 헤아려주시고 그의 불같은 조국애와 고결한 인생관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병원에 입원시켜 유능한 의사들의 치료를 받도록 하시고 그의 입맛까지 헤아리시여 추운 겨울에도 신선한 남새와 남방과일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처녀시절에 다니던 학교자리로부터 가까운 평양시중심부의 풍치좋은 곳에 그가 살 아담한 살림집도 마련해주시고 그가 퇴원하기 며칠전에는 몸소 집을 찾으시여 가구의 위치며 조명과 난방상태까지도 속속들이 료해하시고 바로잡아주시며 나이를 고려하여 식모와 의사까지 붙여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젊은 시절의 그의 공적을 높이 내세워주시며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위대한 장군님께서 리관린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영원한 사랑,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위대한 사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