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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새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의 앞길에 가로놓인 난관과 애로는 한두가지가 아니였으나 그중에서도 민족간부가 적은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였다.
새 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은 가는 곳마다에서 민족간부를 요구하였으나 일제의 식민지노예화, 민족우매화정책의 결과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은 당시 전국적으로 거의나 없었다.
1945년 11월 어느날 평양공설운동장(당시)에서 진행된 평양시청년학생집회에 참가하신
나라없던 그 세월 우리 인민은 자기의 말과 글마저 빼앗기고 일제의 간악한 탄압과 민족말살책동에 그야말로 식민지노예의 생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죽했으면 우리 인민이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고 피의 절규를 하였겠는가.
이윽고 모란봉의 을밀대가 바라보이는 야외휴식장소에 이르신
그때 한 일군이 지금 나라의 민주교육발전을 위해 애쓰는 교육관계자들과 청년들이 평양에 대학이 언제 서게 되는가고 자주 물어본다고 말씀올렸다.
모체대학창설!
그것은 갓 해방된 우리 나라의 교육사업을 단시일내에 가장 빨리, 가장 튼튼하게 추켜세울수 있는 명안중의 명안이였다.
모체대학을 창설하면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를 선도해나갈 민족간부들을 동시에 양성할뿐만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하여 가장 빠른 기간내에 많은 대학들을 내올수 있는것이다.
정녕 조국은 해방되였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있던 시기에 천리혜안의 예지로 먼 앞날을 내다보시고 이렇듯 민족간부양성을 민주주의독립국가건설의 선차적과업으로 제시하시는 민족의 탁월한
해방의 첫 기슭에서 인재강국건설의 첫 뿌리를 마련하시여 민족간부육성의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