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서 대종교의 《천부경》석판과 단군을 상징하는 유물발굴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수 박사 리광희 ,   2020.5.6.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백두산은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민족의 슬기와 넋이 깃든 조종의 산이며 조선혁명의 시원이 열리고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입니다.》 (김정일전집》 제7권 106페지)

김일성종합대학과 216사단직속 인민보안성련대에서는 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서 단군을 숭배하는 민족종교인 대종교관련유물들을 새로 발굴하였다.

216사단직속 인민보안성련대에서는 주체107(2018)년 8월 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서 공사를 진행하다가 이상한 글이 새겨진 대리석판과 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자리에 안전하게 보존한 다음 사진자료를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여왔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주체108(2019)년 7월 력사학부와 조선어문학부의 교원, 박사원생들로 학술연구집단을 뭇고 현지에 나가 인민보안성련대의 일군들과 함께 유물들에 대한 과학적인 발굴을 진행하였다.

《천부경》이 묻혀있는 곳
사진 1.《천부경》이 묻혀있는 곳

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는 국가삼각점표식물이 있는데 그 옆에서 고대문자로 81자의 글을 새긴 대리석판(길이 31cm, 너비 21.5cm)을, 그로부터 2m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정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한변의 길이 17.5cm)을 발굴하였다.

《천부경》의 앞면
사진 2.《천부경》의 앞면
정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
사진 3.정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

김일성종합대학 학술집단이 연구한데 의하면 대리석판은 대종교[라철(본명: 라인영. 1863-1916년)에 의하여 1909년 1월 15일(음력)에 발족)]의 기본경전의 하나인 《천부경》(조화경이라고도 함)의 석판이다.

대리석판의 앞면은 매끈하게 연마하고 매 모서리부분들은 곡면을 이루게 하였으며 뒤면은 절단면 그대로 두고 모서리들은 대충 갈아서 경사면을 형성하였다.

글은 잘 연마된 앞면에 새겼는데 붉은색의 칠감을 발라서 글자획들이 뚜렷이 나타나게 하였고 뒤면에는 파란색의 필기도구로 네변두리에서 1.5cm정도 들어와 줄들을 그어 갈아버릴 부분을 표시한 흔적이 있다.

대리석판의 제일 우에는 《천부경》이라는 제목을 한자로 썼고 가로 9자씩 9줄로 쓴 총 81자의 본문은 고대문자로 되였다.

그 내용을 간략하여 보면 세계가 천지만물이전에 본래 하나의 혼돈한 실체로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운동변화하였으며 그 과정에 혼돈한 전일체로부터 하늘, 땅, 사람을 비롯한 만물이 발생하였다는것과 다양한 천지만물은 혼돈속에서 끊임없이 발생소멸하지만 혼돈한 전일체의 근본은 변함이 없으며 시초와 종말이 없이 무한하고 영원하다는것이다.

《천부경》은 환웅시대로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다가 어느때인가 옛 비석에 고조선시대의 문자인 신지글자로 기록되였는데 그것을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 81자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이번에 발굴한 석판에서 81자로 된 《천부경》원문은 갑골문(B.C.14세기-B.C.12세기사이에 사용된 문자)이 90%이상이며 나머지는 전문(B.C.9세기-B.C.3세기사이에 사용된 문자)으로 되였다. 《천부경》석판의 대부분 글자들이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의 문자체로 되였으므로 매우 오래전에 작성된 문서인듯한 감을 주고있다.

단군을 숭상한 대종교인들은 단군조선시기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는 《천부경》의 유구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기들의 문자지식상에서 가장 오래다고 본 갑골문의 문자체를 선택하였던것으로 인정된다.

대종교에서 《천부경》과 함께 기본경전의 하나로 여기는 《삼일신고》도 고대로부터 내려오던것을 발해시기에 다시 편찬하여 백두산 보본단의 돌집안에 보관하였댔는데 조선봉건왕조말기에 백봉신사라고 하는 사람이 백두산에서 10여년간 은신하여 도를 닦는 과정에 발굴하여 1905년 12월 30일 대종교의 창시자 라철에게 전하여줌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고 한다.

《천부경》의 석판과 함께 나온 정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은 단군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라고 인정된다.

정삼각형 푸른색옥돌판의 앞면과 옆면들은 손으로 잘 연마하여 매끈하게 하고 뒤면은 절단면을 그대로 두어 약간 깔깔한 감을 준다.

대종교에서는 원형(○), 사각형(□), 삼각형(△)의 표식물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합성하여 기발을 만들어 저들의 기본리념인 《삼신일체》의 뜻을 나타내고있다. 여기에서 원형은 환인, 사각형은 환웅, 삼각형은 환검(단군)을 상징한다고 한다.

단군의 상징물을 푸른색옥돌로 만든것은 《삼일신고》를 원래 동해기슭에서 가져온 푸른색돌에 새겼다는 전설과 련관시켜볼수 있다.

《삼일신고》는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고 첫 국왕으로 취임할 때 인간세상을 널리 구제할데 대한 큰뜻을 품고 신하였던 팽우에게 한 《말》로서 고시가 동해기슭에서 캐온 푸른돌에 새겼다고 한다.

이러한 유물들이 백두산의 장군봉마루에 묻힌 리유는 단군을 숭상하는 대종교인들이 백두산을 대종교의 성지, 조선민족의 성지로 여기면서 끝없이 숭상하였기때문이라고 본다.

대종교에서는 하늘임금의 아들인 환웅을 인간세상에 내려보낸 곳, 환웅의 아들인 환검(단군)이 태여난 곳, 대종교가 발원한 곳이 모두 백두산이며 우리 민족의 천국도 백두산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백두산을 높이 숭상하였다.

이것은 일제의 악독한 식민지통치하에서 갖은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조종의 산인 백두산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줄 절세의 위인이 출현하기를 애타게 바라던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같은 념원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에서 당시 백두산에 대한 숭상은 조선에 대한 숭상이였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천부경》의 석판과 삼각형의 푸른색옥돌판을 백두산에 묻은 계기는 대종교인들이 백두산에 올라 제사를 비롯한 숭상행사를 진행한것과 결부시켜볼수 있다.

대종교는 1909년에 발족된 후 1914년 5월 13일에는 경성(서울)에 있던 대종교총본사를 백두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화룡현 청파호로 옮겼다.

그후 인차 백두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때 대종교의 총본사 전리였던 강우는 자기의 가슴과 팔을 칼로 긋고 피로 쓴 《혈고사》에서 천신이 내려와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나라를 회복하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다고 한다.

대종교인들은 그후 이러한 백두산숭상행사를 계속 진행하는 과정에 자기들이 신성시하던 물건들을 장군봉마루에 묻었을것이다.

그 년대는 《녕변군지》의 기록과 문자체, 색감에 대한 분석자료를 가지고 추정할수 있다.

《녕변군지》에 의하면 계연수라는 사람이 1917년에 약을 캐러 태백산골짜기 끝까지 들어가 돌벼랑에서 《천부경》의 글 81자를 보고 그대로 베껴다가 윤호정이라는 사람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81자로 된 《천부경》의 원문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17년이후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천부경》원문의 대부분을 이루는 갑골문에 대한 연구결과가 처음으로 알려진것은 1930년이다. 그러므로 이 연구자료를 리용하여 《천부경》석판을 만든 시기는 적어도 1930년이후로 될수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분석연구소에서 글자를 새긴 붉은색색감을 푸리에변환적외선분석법으로 분석한 결과 1912년이후부터 1930년대사이에 만들어진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므로 이 유물들을 백두산에 묻은 년대를 1930년대초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것 같다.

이 유물들의 발굴상태를 연구하여보면 국가삼각점표식물을 세울 때 1차적으로 발견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천부경》의 석판이 삼각점표식물과 같은 구뎅이안에 매우 가까이에 있는데 이것은 표식물을 묻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수 없는 상태이다. 더우기는 석판의 뒤면에 못같은것으로 조선글로 《오》자를 새긴 흔적이 있다.

이것은 1960-1970년대초사이에 삼각점표식물을 새로 만들어세울 때 《천부경》의 석판과 푸른색의 삼각형돌판을 발견하였댔다는것을 의미한다.

인민보안성련대의 오랜 돌가공경험을 가진 일군들의 견해와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이 정밀분석결과를 종합하여보면 《천부경》석판의 석재는 함경남도 리원에서 나오는 대리석이며 삼각형의 푸른색옥돌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나오는 사문석이다.

백두산 장군봉마루에서 발굴된 대종교관계유물들은 조선민족이 예로부터 백두산을 조종의 산으로, 우리 민족을 구원하여줄 위인이 출현할 성지로 높이 숭상하였다는 사실을 뚜렷이 실증하여준다.

백두산천지호반에서 발견된 룡신비각, 조선봉건왕조시기 제단유적, 종덕사 등과 함께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은 다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얼마나 높이 숭상하여왔는가를 보여주는 물질자료들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에서 조선사람들이 백두산을 얼마나 우러러보았는가는 대종교나 천불교관계인물인 천화도인이 세운 룡신비각에도 밝혀져있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번에 발굴된 《천부경》의 석판과 단군을 형상한 푸른색옥돌판은 조선민족의 백두산숭상의식을 보여주는데서 룡신비각과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제단유적, 종덕사에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유물들이라고 볼수 있다.